정호성 "문건 유출했지만 대통령과 공모 없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사진)이 박근혜 대통령의 ‘흑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18일 열린 공판에서 정 전 비서관은 최순실 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박 대통령의 구체적 지시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이 최씨에게 문건을 넘겨준 것도 모두 대통령을 잘 보좌하기 위한 ‘선의’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검찰의 공소사실은 인정하지만 공무상 비밀누설의 ‘공범’으로 지목되는 박 대통령과의 직접 연관성은 부인하면서 자신의 처벌 수위를 낮추려는 시도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본인이나 일반인의 시각에서 ‘공모’라고 하면 뭔가 둘이 짜고 계획적으로 나쁜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라며 박 대통령과의 공모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최씨 의견을 들어서 반영할 부분이 있으면 반영하라고 말한 건 맞지만 건건이 ‘이것저것 보내라’고 지시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의견을 들어보라’고만 했을 뿐 문건 유출 등 구체적인 행동을 한 것은 자신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다. 그는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는 데 무언가 잘해보려고, 한 번이라도 더 체크해보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이라며 “본인 역시 대통령이 일하는 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잘 보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공모 얘기는 가슴이 아프다”고 억울함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이날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검찰 조사에서 “검찰이 확보한 태블릿PC에 담긴 문건은 자신이 보낸 게 맞고, 최씨 외에는 그런 문건을 보낸 적이 없다”고 한 진술을 공개했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에서 “정부 초기 박 대통령이 감사원장 등 고위직 인선자료 등에 대해 최씨 의견을 들어보라고 지시해 문건을 최씨에게 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태블릿PC에 담긴 문건에 대해선 “PC에 저장된 문건은 (내가) 최씨에게 보내준 게 맞다”고 진술했다. 최씨가 태블릿PC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거듭 주장하지만 정 전 비서관 진술을 볼 때 최씨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정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공모해 2013년 1월부터 작년 4월까지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문건 총 47건을 최씨에게 이메일 등으로 전달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를 받고 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