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우리말 운동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 강의실. 은희철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가 ‘우리말 의학용어 만들기’를 주제로 전문용어의 순화 방안과 그 어려움을 소개했다. 그는 30년 가까이 의학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다. 이를 토대로 2013년 《아름다운 우리말 의학 전문용어 만들기》란 책을 내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에서 1977년 의학용어집 1판을 펴낸 지 올해로 만 40년이다. 지금은 여섯 번째 개정판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한자어와 외래어가 혼용되고, 순화어는 일상생활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박피술과 모낭은 피부벗김술, 털집으로 순화했지만 사전에서 잠자고 있을 뿐이다. 천식이나 골다공증은 언론 등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졌으므로 굳이 바꿀 필요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계안, 담마진, 현훈, 개선, 섬망, 맥립종.’ 정체불명의 암호 같은 이 말들은 누구나 아는 질병의 한자 이름이다. 계안은 티눈을 가리키는 말이다. 도무지 감 잡을 수 없는 담마진은 두드러기다. 현훈이라 하면 여간해서 알아보기 어렵지만 어지럼증이라 하면 누구나 안다. 개선도 아리송한 단어인데, 옴의 한자어다. 알쏭달쏭한 섬망은 헛소리를 이른다. 맥립종이라 하면 무슨 큰 질병 같기도 하지만 누구나 앓아본 적이 있는 다래끼다.
전문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까닭은 국민의 언어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다. 불필요한 행정비용을 줄이고 소비자와의 소통을 강화해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쉬운 공공언어 쓰기 운동’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은 교수는 “소양증을 가려움증으로 바꾼 것처럼 가능한 한 친숙한 용어를 쓰는 게 중요하다”며 “일단 바꾼 용어는 전문의 등 각종 자격시험과 출판물에 적극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