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혼술' '혼밥'의 시대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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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외로울 때도 곁을 지켜주는 SNS
영혼의 허기 달래는 그 대화 누가 탓하랴
황주리 < 화가 >
영혼의 허기 달래는 그 대화 누가 탓하랴
황주리 < 화가 >
![[문화의 향기] '혼술' '혼밥'의 시대를 넘어서](https://img.hankyung.com/photo/201701/AA.13183917.1.jpg)
하지만 지금 세대의 혼술 혼밥은 우리 시절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은 예전처럼 혼자 밥을 먹거나 술을 먹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과 함께 먹고 마신다. 누군가와 카톡을 치거나 게임을 하면서. 어쩌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혼자를 잃어버린 세대다. 혼자 있으면서 혼자 있지 못하는 상태가 꼭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능이 외로운 상태를 즐기는 상태로 진화돼온 건 아닐까? 아니 거기에는 경제적 시간적으로 절약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아니 오늘의 혼술 혼밥의 개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누군가와 같이한다는 착각을 주는 것이라 한다. 진화라 하면 노시인은 노하실지도 모르겠다. 혼자 술 마시는 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고독의 산물이었다고 말하는 시인 고은 선생의 “고독 모르는 것들이 고독하다고. 이것들아 천년 욕망 꺼져야 고독이야” 하시는,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단독자의 초상을 노시인에게서 배운다.
어쩌면 100년 뒤엔 아무도 집을 사지 않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그저 잠시 머무르다 더 편리하고 마음에 드는 공간으로 계속 옮겨 사는 신유목민의 시대, 어쩌면 부유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겨울에는 따뜻한 곳으로 여름에는 서늘한 곳으로 옮겨 사는 꿈의 시대가 머지않아 올지 모른다. 언젠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문득 이게 바로 ‘영혼의 다단계’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잘 쓰면 우리의 고독을 토닥이는 좋은 친구지만, 잘못 쓰면 영혼에 부작용이 생기는 싸구려 약 같은 거랄까? 하지만 정말 SNS 덕에 심심하거나 외로운 사람은 없어져간다. 라면처럼 인스턴트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우리들의 SNS 대화는 점점 더 넓게 세계를 향해 퍼져나간다. 하긴 순간의 허기를 절묘하게 채워주는 라면을 누가 함부로 말하랴? 다시 한번 노시인의 말씀을 적어본다.
“미래는 늘 캄캄하다. 미래는 어두워야 미래다. 우리는 늘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으로 가는 거다. 미래여 오라.”
황주리 <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