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들이 연이어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 여느 대선보다 일찍 정책 공약 경쟁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추락하는 경제를 위기에서 건져 올릴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상당수 후보가 ‘경제 성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채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에 치중한 공약을 내놓아 그나마 남은 성장의 불씨마저 꺼뜨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위기극복 눈감은 잠룡들] '경제 성장'은 쏙 빠진 대선후보 1호 공약
◆“재벌개혁·복지부터”

대선주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재벌개혁’을 외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호 공약’으로 재벌개혁을 내세웠다.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등을 도입해 대주주를 견제하고 재벌 총수 일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재벌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대기업을 재벌 가문에서 분리해 경영권을 빼앗고 ‘한국판 리코법’을 제정해 재벌의 범죄수익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리코법은 미국에서 마피아 등 조직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시행한 법률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계열분리명령제와 기업분할명령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재벌이 모든 걸 통제하니 중소기업이 살길이 없다”며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재벌 위주 경제 성장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며 재벌개혁 흐름에 동조하고 있다. 지나친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고 공정한 시장 경쟁 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이 재벌개혁 공약의 취지지만 재계에선 기업을 경영권 위협에 노출시키고 과도한 규제로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 재정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복지 공약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강화, 다자녀 국가 책임제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아동수당은 12세 이하 아동에게 월 10만~30만원을 지급하면 연간 15조원이 들어가는 대형 복지 공약이다.

이 시장은 전 국민의 절반이 넘는 2800만명에게 연간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시장도 아동·청년·노인에게 월 30만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 공약을 내놓았다. 유 의원은 육아휴직 3년 확대 및 육아휴직급여 인상을 1호 공약으로 제시했다.

◆구호뿐인 성장정책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문 전 대표는 ‘국민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을 성장 정책으로 제시했지만 원론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 증대 등을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장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분배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공정성장’ 역시 경제민주화의 다른 이름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9일 KAIST를 방문한 자리에서 “과학기술 발전에 더욱 중점을 두고 4차 산업혁명에 더 힘써야 한다”고 말한 것 외엔 경제성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것이 없다.

유 의원은 청년 창업 활성화 등 혁신성장을 새로운 경제성장 패러다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아직 각론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모병제 전환, 사병 월급 인상 등 국방 분야와 사교육 철폐, 특목고·자사고 폐지 등 교육 분야 공약을 내놓았으나 경제성장과 관련해선 ‘공유적 시장경제’라는 슬로건만 제시하고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