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반외팔목(盤外八目)
바둑 격언에 ‘반외팔목(盤外八目)’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자면 바둑판 밖에서 보면 8집이 더 유리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불안, 초조, 욕심 등으로 인해 눈앞에 있는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걸 비유하는 말이다.

바둑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런 경험을 많이 한다. 바둑판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때는 자신이 불리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멀리 떨어져서 보면 오히려 앞서고 있다. 나중에 복기하면 그때서야 왜 내가 그것을 못 봤을까 후회한다.

인생도 그렇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고난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기에 자기만 불행하다고 여긴다. 불공평하게 굴러가는 것 같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다 똑같다. 누구나 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아쉬워하고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살고 있다.

이런 부러움이 단순한 질투를 넘어 야심과 성취로 이어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평만 한다. 하지만 ‘반외팔목’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소수의 용기 있는 사람은 그 벽을 뛰어넘어 높이 올라간다. 더 이상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당당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제자 이창호에게 거의 모든 타이틀을 내주며 힘든 시기를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8집을 더 갖고 있을 거라고.” 타이틀을 잃긴 했지만 손가락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심각한 뇌손상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킬 게 없으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바둑을 할 수 있었고, 잃어버린 타이틀도 하나하나 되찾아왔다.

우리는 모두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둑판 위에 서 있다. 돌을 던지고 나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겐 보여주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 자신은 아무것도 없다며 괴로워할지 몰라도 판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경제는 어렵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져만 가고 있다. 트럼프의 취임과 북핵 문제, 한·중, 한·일 갈등 등 대한민국을 둘러싼 안보 환경 역시 녹록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8집을 더 갖고 있다. 미처 보지 못한 내면의 가능성을 믿고 도전해 나간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저력을 발휘하리라 믿는다. 많은 대선 후보가 저마다의 공약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부디 각자의 울타리 밖에서 ‘반외팔목’의 의미를 되새겨 보길 바란다.

조훈현 < 새누리당 국회의원 chohoonh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