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용 교수는
송재용 교수는 "일본형 저성장, 4차 산업혁명 등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 기업들이 근본적 혁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최혁 기자
[ 김봉구 기자 ] ‘삼성 전문가’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사진)는 “올해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단기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를 필두로 한 기술력 우위, 중장기적으로는 선제적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봤다.

그는 한국 대학 교수로는 처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논문 주제가 삼성의 경영전략이었다. 삼성의 변화와 도약을 다룬 송 교수의 저서 《삼성 웨이》는 국내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올해 한국전략경영학회장에 취임한 송 교수는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의 반도체 기술경쟁력은 경쟁업체들과 2년, 후발업체들과는 5~10년의 격차가 있다. 수요가 급증하는 모바일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패널도 독보적이어서 애플 역시 삼성전자에게서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올해 실적이 폭발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삼성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이유는 보다 근본적이다. ‘성공의 역설’에 빠지지 않고 선제적으로 미래에 대응하고 있는 점을 짚었다. 송 교수는 “한화와의 화학·방산 분야 빅딜, 하만 인수 등 주력 분야 위주 선제적·자발적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앞장서는 게 핵심요인”이라고 설명했다.

- ‘최순실 사태’ 등 부정적 이슈에도 삼성의 실적과 주가는 상한가인데.

“탄탄한 기술력 영향이 크다. 메모리 반도체는 글로벌 치킨게임이 이미 끝났다. 주요 업체가 3~4군데로 압축됐는데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압도적이다. 중국이 투자하고 있지만 삼성과는 5~10년 격차가 나 쫓아오기 쉽지 않다.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도 올라가고 있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반도체가 더 중요해진다.”

- OLED 디스플레이도 강세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소형 OLED 디스플레이 패널은 삼성이 독보적이다. 애플도 삼성전자에게서 사지 않을 수 없다. 프리미엄 가전 분야 역시 영업이익이 점차 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삼성이 올해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 갤럭시노트7 사태를 만회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현재로선 유일한 불확실성이 스마트폰이다. 갤노트7 사태가 재연되면 무선사업부(IM)를 닫을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깔려있다. 갤럭시S8 출시를 당초보다 한 달 가량 늦추는 것도 확실히 하려는 의도 아니겠나. 갤노트7에 이어 갤S8도 성능 자체는 굉장할 것이다. 발화 사태 재연만 없다면 사상 최고 실적을 능가할 수 있다.”

- 기술적 관점 외의 사안에선 어떻게 평가하나.

“전략경영 연구자 입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비교적 삼성을 잘 이끌어 왔다고 본다. 핵심주력 분야 위주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한화와의 빅딜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인수·합병(M&A)도 활발해졌다. 하만 인수는 미래자동차 분야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기존 정보기술(IT) 사업과의 시너지로 이어질 것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저성장기에 오픈 이노베이션을 잘하고 있다.”

올해 한국전략경영학회장에 취임한 송재용 교수는
올해 한국전략경영학회장에 취임한 송재용 교수는 "오는 6월 학회 창립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전환기 한국 기업들이 가야할 길을 모색하는 자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 최혁 기자
- 1등 기업이 변하기 어려운데, 삼성은 잘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 기업들이 ‘그동안 잘해왔으니 해온 대로 하겠다’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어느 순간 망할 수 있다. 이른바 ‘성공의 역설’이다. 최고 제조업체인 제너럴일렉트릭(GE)마저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GE도 하는데, 혁신을 주저하면 되겠는가. 삼성을 평가하는 부분도 이런 맥락이다.”

- 혁신하고 싶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원칙을 세우면 된다. 고도성장기에 맞춰진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구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핵심주력 분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정리해 ‘관련형 다각화’를 해야 한다. 삼성의 중심은 전자다. 비주력인 화학·방산 분야는 정리하고, 삼성이 잘할 수 있는 IT 분야와 연계되는 미래자동차 쪽에 초점을 맞춰 전장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건가.

“삼성과 한화의 빅딜은 모범적 윈윈(win-win) 사례다. 삼성은 비주력 사업을 매각했고 한화는 인수를 통해 주력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다른 그룹들도 그렇게 가야할 것이다. 그러면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아나가야 한다. 국내 대기업 중 가장 상황이 좋은 삼성이 가장 먼저 움직이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더 빨리, 보다 과감히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인터뷰는 지난 18일 서울대 LG경영관 송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면서 선제적·자발적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거듭 강조했다. 송 교수의 주장대로 SK그룹은 23일 LG실트론을 전격 인수하며 올해 빅딜의 신호탄을 쐈다.

-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일본형 저성장으로 돌입하는 동시에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금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골든타임이 얼마 안 남았다. 학회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이런 고민을 담아 전략경영 관점에서 전환기 한국 기업들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하려 한다.”

- 어떤 주제가 다뤄지나.

“오는 6월 ‘패러다임 대격변 시대 한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혁신 연구’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4가지 포인트를 잡았다. 앞서 언급한 선제적·자발적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미래 성장동력 발굴, 해외 고성장 시장을 찾는 글로벌 전략, 시장추격자에서 시장선도자로의 전략 변화, 벤처·중소기업 생태계 육성이다.”

- 학회 전·현직 회장단이 연구에 대거 참여했다고.

“전·현직 회장단을 중심으로 50대 초중반 중견 학자들이 나눠 연구하고 있다. 그간의 학술적 성과를 토대로 영향력 있는 현실 연구를 해보자는 취지다. 심포지엄 기획연구 결과는 책으로도 출간할 계획이다. 재작년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들이 《축적의 시간》이란 책을 펴내 화제가 됐다. ‘경영대 버전 《축적의 시간》’을 목표로 삼겠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기업들의 자발적·선제적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최혁 기자
- 변화 필요성을 ‘성공의 역설’ 개념으로 풀어냈는데.

“대기업도 변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졌다. 제한된 자원으로 잘 하지도 못하는 분야까지 하려면 어떻게 되겠나. 판판이 깨질 수밖에 없다. 아모레퍼시픽을 보자. 25개 계열사를 주력인 화장품 분야 6개로 재편한 결과 엄청나게 성장했다. 기업이 모든 걸 다하려고 하면 안 되는 시대다.”

- 오픈 이노베이션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털어낼 건 털어내고 필요하면 외부에서 조달하는 것이 오픈 이노베이션의 기본 개념이다. 모든 대기업이 광고기획사, 건설사를 끼고 있어야 할 이유가 뭔가. 과당경쟁으로 귀결된다. ‘과거의 성공모델이 앞으로도 유효할까?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기업이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20주년 심포지엄의 핵심 아젠다(의제)는 이것이다.”

- 경영학자들이 학술논문 못지않게 현실사례 연구에도 힘써야 하지 않겠나.

“응용학문이니 그럴 필요가 있지만 단계를 잘 밟아 올라가는 게 좋다. 교수 초년기엔 학술연구에 전념하고, 어느정도 성과를 내고 경륜이 쌓이면 현실사회에 영향을 주는 연구 비중을 늘려가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이번 학회 연구진을 50대 초중반으로 꾸린 것도 그런 이유다. 대학 차원에서는 연구의 균형을 잘 찾으면 될 것이다.”

- 전략경영 분야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전략경영학회 창립을 주도한 조동성 교수님(현 인천대 총장)이 은사였다. 당시엔 국내에 전략경영 전공자가 드물었다. 저도 2001년 연세대가 전략경영 교수를 뽑을 때 한국에 들어왔고 이후 서울대로 옮겼다. 은사님이 초대 회장인 학회가 성년을 맞은 올해 회장을 맡아 감회가 새롭다. 학회가 한 단계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겠다.”

◆ 송재용 한국전략경영학회장은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 연세대 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모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경영대 부학장, 경영사례연구센터장 등을 지냈으며 2014년 서울대 경영대 석학교수로 임명됐다. 한국경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한국국제경영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올해 한국전략경영학회장에 취임했다.

특히 그는 국내 대학 교수로는 처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을 게재해 화제가 됐다. 최근까지 국제경영 분야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스터디(JIBS)’ 에디터를 맡았다. 해외 주요국에 출판된 《삼성 웨이》,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CEO가 휴가철에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한 《스마트 경영》 등 베스트셀러를 저술했다.


☞ 송재용 교수 "한국 기업들, '성공의 덫'에서 벗어나야 혁신 가능"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