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비 수석부회장 "한·미 FTA 없었다면 미국 무역적자 더 커졌을 것"
미국 내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인사로 꼽히는 태미 오버비 미국상공회의소 아시아담당 수석부회장(사진)은 24일(현지시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폐기될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버비 수석부회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조지워싱턴대 비즈니스스쿨 한국경영연구소(KMI)가 주최한 신년 세미나에 참석해 “미국 기업인은 한·미 FTA를 ‘골드 스탠더드(황금 기준)’로 믿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09년까지 21년간 한국에 살면서 13년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 대표로 근무한 한국통(通)이다. 현재 미 상의에서 아시아담당 수석부회장과 미·한 비즈니스위원회 대표를 겸직하고 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선언, TPP 탈퇴 행정명령 서명 등 잇따라 미국 우선주의 무역정책 기조를 현실화하는 데 대해 “많은 한국 친구가 미국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냐고 묻는다”며 “그럴 때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토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켄터키에 살고 있지 않아’라는 대사로 답을 대신하곤 한다”고 말했다.

오버비 수석부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미국인의 일자리를 죽이는 협정’ ‘재앙’이라고 비판한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전제한 뒤 조목조목 사실관계를 들어 비판했다. 그는 “임금 정체와 소득 불평등, 제조업 일자리 감소 등 더 광범위한 이슈와 관련해 무역을 더는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며 “일자리 감소의 주된 이유는 자동화 등 기술 진보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이 한·미 FTA로 손해를 본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미국은 FTA 체결 20개국 중 14개국에서 흑자를 내고 있다. 한국과의 교역에서 상품 부문은 적자지만, 서비스 부문은 흑자고 무기와 에너지 수출까지 감안하면 적자 규모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미 FTA가 아니었다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폭이 수십억달러는 더 났을 것”이라며 “미국이 적자인 이유는 미국에서 소비가 폭발하는 동안 한국이 내수 부진으로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오버비 수석부회장은 “전체적으로 볼 때 한·미 FTA는 성공적이고 두 나라가 공유하는 양국 방위조약에 중요한 보완재기도 하다”며 “미국은 대선 때의 정치적 구호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을 얘기하는 등 최근 동향을 감안했을 때 다음 타깃은 한국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한·미 FTA가 높은 시장 개방 수준으로 체결됐지만 금융정보 흐름 등 몇 가지 이행상의 문제점은 해결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