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비타민 경제] 과학원리 속에 경제원리가 보인다
공부를 할수록 세상의 진리는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학문이 있지만 그 학문의 진리들은 희한하게도 서로 통한다. 산에 오르는 길이 수없이 많아도 정상은 하나이듯이. 그런 점에서 과학원리들 중에는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연상시키는 것이 적지 않다. 사람의 행동이나 사회현상의 법칙들이 과학법칙과 닮아 있다는 얘기다.

[오형규의 비타민 경제] 과학원리 속에 경제원리가 보인다
물리학의 기초인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경제원리를 연상시킨다. 에너지의 형태가 빛 속도 열 등으로 바뀌더라도 에너지 총량은 변치 않는다는 게 열역학 제1법칙이다. 수력발전은 물의 위치에너지가 터빈을 돌려 운동에너지로, 다시 발전기를 통해 전기에너지로 바뀐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경제학의 기회비용이 바로 그런 개념이다.

화학에서 강(强)산성의 염산(HCl)과 강한 염기성인 양잿물, 즉 수산화나트륨(NaOH)이 섞이면 어떻게 변할까. 양극단의 독극물이 만나 인체에 필수인 물(H₂O)과 소금(NaCl)으로 바뀐다. 중화(中和) 반응이다. 과일 통조림도 과일 속껍질을 식품첨가용 염산으로 제거한 뒤 수산화나트륨으로 인체에 무해하게 중화시켜 만든다. 중화 반응은 마치 수요와 공급이 만나 균형가격을 이루는 것과 같다.

생물학의 최소율 법칙(리비히 법칙)은 온갖 필수 영양소가 아무리 풍족해도 가장 부족한 한 가지 요소에 의해 식물의 생장이 결정된다는 원리다. 고시의 과락(科落)에 비유할 수 있다. 정치판 수준도 가장 질 낮은 정치인이 결정한다. 사람들이 왜 불행하다고 느끼는지도 최소율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행복은 소득뿐 아니라 건강, 안전, 환경, 우애, 자존감 등이 두루 충족돼야 한다. 하나만 모자라도 행복감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최소율 법칙은 경제학의 이스털린의 역설로 변주된 듯하다.

일찍이 고려 문인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뿔 달린 짐승은 윗니가 없다. 날개가 있으면 다리는 두 개뿐이다. 꽃이 좋으면 열매가 시원치 않다”고 했다. 가장 빠른 치타도 300m 이상을 전력 질주했다간 심장이 터지고 말 것이다. 호랑이도 늑대의 지구력을 못 당한다. 완벽한 생물이 없듯이 사람도 재주가 많으면 대개 덕이 부족하다(才勝薄德). 어떤 생물이라도 비교우위는 있기에 살 수 있다.

과학원리에서 경제원리가 보이고, 경제원리 속에 과학원리가 녹아 있다. 이는 모두 조물주의 우주원리에 속하는 것이어서일까. 융·복합시대에 통섭형 인재를 요구하는 요즘 반쪽짜리 문과 출신으로서 아쉬움이 많다. 문·이과 통합교육이 절실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