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세배 하자마자 "올해 넘기면…" 또 결혼 독촉 "손주는 언제쯤…" 결혼했더니 이번엔 시댁 압박
설 명절 전후는 김과장 이대리가 1년 중 나이에 대한 얘기를 가장 많이 듣는 시기다. 연휴 동안 가족이나 친척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이가 자주 언급되는 건 기본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가 대부분인 김과장 이대리에겐 항상 “올해 나이가 몇이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미혼이면 “만나는 사람 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는 추가 질문이 뒤따른다. 기혼일 경우에는 “더 나이 들기 전에 둘째를 가져야 한다” “세월 금방 간다”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

이런 ‘나이 타령’은 회사 생활에서도 계속된다. 설날이 되기 1주일 전부터 끝나고 1주일가량이 가장 심하다. 설을 앞두고는 안부나 계획을 묻다가, 끝나고는 고향 다녀온 얘기를 하다가 나이로 화제가 돌아가기 일쑤다. 쏟아지는 나이 타령에 고달픈 김과장 이대리의 사연을 들어봤다.

나이 타령에 화병 나요

유통회사에 다니는 최모 대리(33)는 설 연휴 동안 나이 문제로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최 대리를 만난 친척들이 “이젠 결혼할 나이다” “이렇게 자꾸 세월 흘려보내면 나중엔 결혼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등의 얘기를 연달아 늘어놓아서다. 그렇지 않아도 서른을 넘긴 후 나이 먹는다는 것에 극도로 민감해진 터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최 대리는 “나이 타령이 심해지는 연초가 돌아오는 게 무섭다”고 토로했다. 매년 1월1일 신정에 이어 설날(구정) 떡국을 먹기까지 나이 스트레스가 계속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곧 생일이 다가오면 ‘만 나이’가 늘었다는 이유로 또 나이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겁니다. 외국에 사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나이를 이렇게 따지는 건 우리나라가 유별난 것 같아요. 괴롭습니다.”

또 다른 미혼 직장인 김모 과장(37)은 설 연휴에 나이에 관한 잔소리를 듣는 게 싫어 일부러 고향에 늦게 내려갔다. 예년 같으면 설 전날 일찌감치 고향을 방문했겠지만 올해는 더욱 몸을 사렸다. 지난해 추석 때 작은아버지로부터 “내년에 서른일곱이 되면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건데, 그때까지 결혼 계획이 없으면 큰일”이라는 잔소리에 며칠 동안 시달린 게 생각나서다. 김 과장은 “작은아버지가 고향에 다녀가신 뒤에 가는 것을 택했다”며 “명절을 즐겁게 보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직장생활 4년차인 장모 대리(33)는 그동안 매년 명절마다 국내외 여행을 즐겼다. 집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는 데다 가족이 모두 같은 동네에 살아 평소 자주 보기 때문이다. 가족도 “아직 어리고 혼자일 때 여행을 많이 다니라”며 적극 지원해줬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결혼할 나이도 다가오는데 여자친구와 여행가는 거 아니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자는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올해도 설 명절에 혼자 일본 여행을 가겠다고 말하자 가족은 못마땅해 했다. 급기야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큰 조카에게 입학선물을 할 겸 일본 여행을 함께 다녀오라는 ‘임무’를 맡겼다. 장 대리는 “요즘은 집에서 나이를 둘러싼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있다”며 “올해 추석에는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해서 점수를 따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인·장모도 나이 얘기

나이 타령에 괴로운 건 미혼 직장인만이 아니다. 가전업체에 다니는 박모 과장(38)은 설 연휴에 처가를 다녀온 뒤부터 잠을 설쳤다. 장인의 얘기가 마음에 걸려서다. 장인은 “자네 올해 나이가 몇인가”라며 말문을 열더니 “이제 곧 마흔인데 그 전에 집은 장만해야 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또 “우리 딸이 아직 전세방에 사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리네”라고 덧붙였다. 그 순간 박 과장은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박 과장은 “나이가 많아진다고 자산이 금방 늘어나는 건 아닌데 착잡하다”고 털어놨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신 차장(38)도 자신을 나이 타령의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신 차장은 딩크(DINK: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족이다. 결혼을 늦게 한 데다 건강상의 문제도 겹치자 부부는 아이 없는 삶을 택했다. 대신 1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해외여행을 가며 오붓하게 지냈다. 결혼 4년차임에도 신혼 같은 삶을 유지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매년 이맘때면 속이 문드러진다. 설에 시댁을 방문하면 시아버지가 “손주를 본 친구들이 부럽다”며 “손주를 한번 안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다. 남편이 “요즘은 아이 없이 사는 부부도 많다”고 설득해도 소용없다. 신 차장은 올해 설에도 시아버지로부터 “나이 한 살 더 먹어서 큰일이다” “노산이 걱정된다”는 말을 들었다. “세배를 하자마자 나이를 물으며 노산 얘기를 하시는데 숨이 턱 막혔어요. 언제쯤 이해해주실까요.”

직장에서도 나이 타령

전자업체에 다니는 이모 대리(30)는 이달 들어 말수가 부쩍 줄었다. 부서에서 이 대리의 나이가 수시로 화제에 올라서다. 설 연휴를 1주일 앞두고는 더욱 심해졌다. 상사들은 회식에서든 회의에서든 “우리 이 대리 올해 나이가 몇이지?” “서른이면 이제 결혼할 때 다 됐네” “집에 가면 부모님이 결혼하라고 재촉 안 하시냐”는 등 나이 타령을 쏟아냈다. 아직 결혼 계획이 없는 이 대리에겐 온통 부담되는 얘기였다. 고민하던 이 대리는 최대한 대화에 끼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 대리는 “식사할 때마다 나이 얘기를 들어야 해서 우울증이 걸릴 지경”이라며 “좋은 얘기도 한두 번이지 계속하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직장인 임모씨(29)도 회사에서 나이를 거론하는 상사들이 부담스럽다. 임씨가 받는 질문은 대부분 ‘20대 마지막 해를 보내는 기분’이나 ‘29세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다. 임씨는 “안 그래도 싱숭생숭한데 잊을 만하면 얘기가 나온다”며 “한 번 물어보는 거면 몰라도 여러 상사가 돌아가면서 물어보니까 피곤하고 지친다”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