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 1조 손실…40년 만에 첫 적자
한국수출입은행이 창립 40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1조원 규모의 순손실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대출과 보증을 합한 총여신이 9조원에 달하는 대우조선해양 부실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산업은행도 같은 이유로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1조원 규모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수출입은행이 적자를 낸 것은 1976년 창립 이래 처음이다. 1조원의 손실은 수출입은행이 지난 40년간 벌어서 쌓은 이익잉여금 약 2조원의 절반에 달한다.

수출입은행이 대규모 적자를 낸 것은 대우조선 여신에 대손충당금을 대거 적립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대우조선 여신의 건전성 등급을 ‘정상’에서 ‘요주의’로 한 단계 낮추면서 충당금을 1조원 넘게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입은행 창립 40년 만의 첫 적자는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대출과 지급보증이 부실화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수출입은행의 대우조선 여신 규모는 약 9조원으로, 지난해 여신건전성 분류를 ‘정상’에서 ‘요주의’로 낮추면서 1조원이 넘는 충당금 부담이 생겼다. 시중은행이 대우조선 여신에 대한 회수 가능성을 낮추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따른 충당금 부담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은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여신은 ‘추정손실’로 분류하고 여신액의 100%를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STX조선에 대한 수출입은행의 여신은 약 1조3500억원 규모였다.

지난해 3분기까지 6511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산업은행도 STX조선이 법정관리로 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산업은행은 STX조선 여신이 3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수출입은행과 마찬가지로 대우조선 여신건전성 등급 하향에 따른 충당금 부담도 생겼다. 지난해 말 대우조선에 대한 대출 1조8000억원을 주식으로 바꾼 출자전환까지 더하면 산업은행의 손실 규모는 1조원 안팎에 달할 것이라는 게 금융권 분석이다. 2015년 1조8951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2년 연속 손실을 기록하는 셈이다.

국책은행의 대규모 손실은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건전성 확보를 위해선 정부 재정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국책은행의 신인도가 흔들리면 국책은행은 물론 시중은행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추가 부담을 져야 한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조선·해운 등 경기민감업종에 대한 대출을 꺼리면서 국책은행의 손실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앞으로 특정 기업에 여신이 과다하게 나가지 않도록 하는 대책을 뒤늦게 내놨다. 대우조선, STX조선처럼 1~2개 기업에 대규모 대출 또는 보증을 했다가 떼이는 경우를 막겠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2분기부터 계열·기업별 여신한도를 사전에 정하기로 했다. 대기업집단과 소속회사에 각각 빌려줄 수 있는 자금한도를 미리 정해서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수출입은행도 특정 기업에 대한 자기자본 대비 여신한도를 줄이기로 했다. 특정 계열 여신한도는 자기자본의 80%에서 50%로, 소속기업은 60%에서 40%로 줄일 방침이다.

그러나 조선·해운업종에 대한 여신이 이미 국책은행으로 너무 쏠린 상황에서 다른 업종의 기업만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조선·해운업 대출 부실이 애꿎은 다른 기업에 대한 대출 조이기로 불똥이 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