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면세점의 위기…동화면세점 매각설 '솔솔'
국내 최초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의 최대 주주인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이 동화면세점 경영권을 내놓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 2년 새 시내면세점 숫자가 급증해 사업 전망이 어둡다고 보고 면세점 사업에서 손을 떼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 회장은 3대 주주인 호텔신라에 지분과 경영권을 가져가 달라고 요청했지만 호텔신라는 거부의사를 밝혔다.

715억원 갚지 못해 경영권 매각?

작년 12월19일은 동화면세점이 호텔신라에 715억원(이자 포함)을 갚아야 하는 날이었다. 김 회장은 2013년 호텔신라에 지분 19.9%를 600억원에 팔았다. 김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롯데관광개발의 용산 재개발 사업에 차질이 빚어져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매각 계약에서 호텔신라에 풋옵션(매도청구권)을 줬다. 호텔신라가 김 회장에게 동화면세점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권리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6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1차 시한이 작년 12월19일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를 갚지 못했다. 2차 시한은 오는 23일이다.

김 회장은 지분을 되사지 않는 대신 호텔신라에 경영권을 통째로 가져가라고 제안했다. 계약 당시 담보로 제공했던 동화면세점 주식 30.2%(57만6000주)를 인수해 달라고 요청한 것. 동화면세점 지분 30.2%를 사실상 거저 가져가라는 얘기였다. 호텔신라는 보유하고 있는 지분 19.9%에 담보로 잡은 주식을 합치면 동화면세점 지분율 50.1%로 경영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호텔신라는 경영권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빌려준 돈을 받는다는 게 명백한 방침이며, 동화면세점 경영권을 인수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또 법적으로도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다. 관세청은 신라면세점 같은 대기업이 중소·중견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을 인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관세법에 따르면 중소·중견 면세점은 특허 취득 후 5년이 지나면 1회에 한해 특허를 갱신할 수 있다. 반면 대기업 면세점은 특허 취득 5년 이후 원점에서 재입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면세 특허의 성격이 달라 대기업이 중소·중견 면세점을 인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관세청의 설명이다.

면세점 경영의지 없는 동화

면세점업계에서는 김 회장이 동화면세점을 경영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동화면세점 영업이익이 2015년 15억원에 그칠 정도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김 회장이 경영권을 내놓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을 보면 전망도 어둡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0월부터 동화면세점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동화면세점에 있던 루이비통과 몽블랑 등 명품 매장이 대거 철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신규 시내면세점에 점포를 내기 위해 동화면세점에서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혈경쟁 영향도 컸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면세점은 여행사에 10% 초반대 수수료를 주는 데 비해 신규 면세점은 30%를 주며 경쟁을 하고 있어 중견 면세점이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동화면세점이 곧 인수합병 시장에 나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동화면세점은 1973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시내면세점이다. 중견 면세점이지만 루이비통 등 명품브랜드 매장을 입점시키며 성장했다. 하지만 실적 악화로 올해 들어서는 영업 시간도 단축했다. 동화면세점 관계자는 “지난해는 중국인 관광객이 하루에 2500명에서 3000명 정도 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많을 때 1500명 정도로 줄었다”고 전했다.

동화면세점 지분은 김 회장이 41.66%, 부인인 신정희 공동대표가 21.58%, 아들 김한성 공동대표가 7.92%를 소유하고 있다. 김 회장은 롯데관광개발 지분 43.55%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특수관계인까지 합하면 지분율이 82.86%에 달한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