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작품을 살 수도, 안 살 수도
작품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날 때마다 늘 같은 고민을 한다.

미술작품은 에디션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세상에 단 한 점뿐이다.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면 다시는 살 수 없을 거라는 조바심에 더 마음이 초조해진다. 그러나 작품을 사고 싶은 강렬한 욕망만큼이나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도 커진다. 작품 구입 비용을 마련할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하니 말이다. 국공립미술관이나 대기업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사립미술관은 소장품 예산이 확보돼 있다. 매년 작품심의위원회를 열어 예산에 맞는 작품을 사면 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대다수 사립미술관은 소장품 예산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연간 운영비로 사용할 예산을 쪼개 소장품 구입비로 써버리면 남은 기간 재정 압박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예산 부족을 핑계로 작품을 사지 않을 수도 없다. 미술관의 브랜드 가치는 미술관이 보유한 소장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느냐가 미술관의 명성과 위상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관광객들이 세계 유명 미술관을 방문하는 목적 중 하나는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그런 이유에서 미술관장이라면 미술사를 수놓은 거장들의 대표작품을 소장하기를 꿈꾸지만 천문학적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어 재정상태가 좋은 미술관이 아니고는 구입이 불가능하다.

소장품 구입 예산이 빠듯한 미술관들은 대신 미래 투자를 한다. 미술사의 거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작가의 저평가된 작품을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는 것을 말한다. 사비나미술관에서 전시했던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면 보람을 느끼는 한편 후회가 생긴다. 그중 한 작가는 비평가들의 호평에 힘입어 10년 사이에 작품값이 열 배나 뛰었다. 작품 가격이 오르기 전 무리해서라도 작품을 샀어야 했는데 소장품 가치를 높일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또다시 후회하지 않으려면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무조건 구입하겠다고 다짐해본다. 다음번에는 눈 딱 감고 저지르자. 그런데 뒷감당은 어떻게 하지?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장·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