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유명한 이론이 있다. 옛 마을에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유 목초지가 많이 있었는데, 누구나 소나 양을 이 공유 목초지에 풀어서 키울 수 있었다. 문제는 공짜로 자신의 가축에게 목초를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을 사람들이 과도하게 가축을 공유지에 풀어 놓아서 목초가 모두 사라지고 황무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공유 목초지가 공유 황무지가 돼 버리면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공짜 목초를 얻을 수 없어 손해를 봤다는 것이 공유지의 비극 이론의 비극적 결말이다.

그런데 이런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한 사람은 유명한 경제학자나 현명한 관료가 아니었다. 바로 철조망을 만든 사람이었다.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유 목초지를 잘게 나눠 마을 사람들에게 소유권을 줘야 했다. 그러면 자신만의 목초지가 황무지가 되는 일이 없도록 마을 사람들이 적절한 수의 가축만을 풀어서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유지를 나누기 위해서는 비싼 담이나 울타리를 쳐야 했는데 그 비용이 너무 높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철조망은 말뚝 몇 개를 박고 쭉 걸어가면서 말뚝에 철조망을 걸면 소나 양이 건너지 못하면서도 비용이 적게 드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현대 사회에는 가축을 키우는 사람도 별로 없고 공유지도 존재하지 않지만 공유지의 비극 현상은 여전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 가짜 환자와 나쁜 의사들이 결탁해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건강보험금을 받아가는 것은 건강보험기금이라는 공유 목초지를 약탈하는 행위다. 가벼운 교통사고에도 마치 심각한 차량 손해가 난 것처럼 비양심적인 자동차 수리점과 결탁해 보험금을 타는 것도 현대판 공유지의 비극이다.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이런 현대판 공유지의 비극이 중대한 문제라는 것에 동의하고 해결 방법을 찾고 있지만, 획기적인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현대판 철조망은 없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최근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정보통신기술산업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환자들의 진단을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AI) 의사 왓슨이 하고 자동차 수리점에도 AI와 같은 차량 진단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과잉 진료와 과잉 수리로 보험금을 타내는 공유지의 비극이 사라지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공유지의 비극이 오래전 한때 존재하던 기이한 현상으로만 기억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한순구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