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트럼프식 통상 압박, 적극적 법적 대응도 필요
우려한 바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정책 행보는 거침이 없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선언에 이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공식화했다. 미국 제조업 부흥과 일자리 보전에 거치적거리는 통상협정들을 모두 손볼 태세다. 제조업 분야에서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많이 내는 ‘불공정’ 무역국가들을 상대로 양자교섭을 진행해 문제를 해결하고 여의치 않으면 통상 보복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과 멕시코 제품에 각각 45%, 3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의 대부분을 제조업 분야에서 거두고 있는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압박은 물론 무역보복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 헌법상 관세나 조세를 부과할 권한은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에 있다. 그런데도 미 의회가 1993년 제정한 NAFTA 이행법률은 멕시코, 캐나다와의 ‘상호적이고 호혜적인 양허 수준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의회와의 협의’를 거쳐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하고 있다. 이런 조항은 2011년 한·미 FTA를 이행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에도 똑같이 도입됐다(공법 112-41, 제201(b)(4)조). 한국과의 양허 균형과 호혜성이 깨졌다고 미국 대통령이 판단하면 의회와의 협의(승인이 아님)만 거친 뒤 관세보복을 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 대통령은 또 교역 불균형과 일자리 유출로 ‘국가안보에 위협’이 가해진다고 판단하면 관세보복을 가할 수 있다(1962년 무역증진법). 닉슨 대통령이 1971년 경제위기를 맞아 10%의 추가 관세를 광범위한 품목에 부과할 당시 국가안보를 이유로 내세운 적이 있다. 미국 대통령은 ‘대규모의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150일 기간에 15%의 관세나 수량제한을 부과할 권한도 갖고 있다. 그리고 외국의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교역관행’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슈퍼 301조 절차를 동원할 수도 있다(1974년 통상법). 미국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라 판단한다면 적성국가에 모든 종류의 통상보복과 자산 동결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1917년 적성국가교역법, 1977년 국제비상사태경제권한법). 그동안 니카라과 파나마 소말리아 등 작은 나라들을 상대로 비상사태에 따른 경제제재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막강한 통상보복 권한을 갖고 있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양허관세율 이상으로 관세를 높이는 식의 통상보복을 취하면 한국은 미국 정부의 조치를 WTO 패널에 제소할 수 있다. 문제는 패널 판정이 나기까지는 미국이 관세보복을 유지하면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WTO 패소 판정을 이행하지 않고 버티면 한국으로서는 상응하는 규모의 무역보복을 미국 제품에 취할 국제법적 권한을 갖게 된다. 북한 핵문제 공동 대응과 방위비 분담 재조정 등 한·미 간 현안 속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대응 보복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둬야 한다. 필요하다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시기를 조정해서라도 대미 협상 레버리지를 높여둘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과도한 조치를 취한다면 피해를 입는 수입업자 등을 통해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다만 미 행정부가 패소하더라도 해당 관세 조치를 철회하는 대신 수량제한 조치로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법원 판례 경향을 보면 정부의 수량제한 조치에는 상당한 재량성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 법원이 국가안보 개념에 대한 해석 시 행정부 판단을 상당히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미 행정부의 관세보복에 법적 대응을 하는 방안도 검토해둬야 한다. 비록 대통령의 조치에 미국 법원이 ‘예비적 금지’ 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드물긴 하지만 우리 주력 수출품에 미치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예비적 금지 판정을 조기에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최원목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