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무대에 선 김광석
디지털 홀로그램 기술로 환생
윤동주의 시는 랩으로 재탄생
시대 뛰어넘어 청춘들에 '울림'
1996년 세상을 떠난 가수 김광석이 다시 무대에 서서 한 말이다. 본인이 없어 아파했을 가족과 팬들을 달래고, 그 순간을 누구보다 아쉬워한다. 또렷한 육성. 조금은 쓸쓸해 보여도 환한 미소도 짓는다. 20년 만에 그가 정말 돌아온 것만 같다.
지난달 28~29일 KBS에서 방영된 ‘특집 디렉터스컷, 감성과학 프로젝트 환생’(사진)에 김광석이 다시 나타났다. 제작진은 디지털 홀로그램 기술을 이용해 그를 재현했다. 음성도 그대로 복원했다. 김광석은 동료들과 함께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다.
우리 곁을 떠난 문화예술인을 색다른 방법으로 추억하는 콘텐츠가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다. 가객 김광석과 시인 윤동주가 대표적이다. 다소 낯선 모습으로 나타난 이들은 사람들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먼 과거나 역사로만 인식되던 인물들이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시간적 간격을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현대적 기술과 감성으로 좁혔다. 심리적 간격도 따라서 줄어들었다. ‘동시대성’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불안과 아픔의 시대, 고뇌와 위로는 시간을 뛰어넘어 청춘들에게 전달됐다.
김광석보다 훨씬 먼 과거 속에 살았던 시인 윤동주는 랩으로 다시 탄생했다. 작년 11월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 열린 ‘역사를 주제로 한 힙합 공연’에서 그의 시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비췄다. 무한도전 출연자 황광희와 가수 다이나믹듀오의 개코는 윤동주 시인의 시와 삶을 다룬 ‘당신의 밤’을 불렀다. “당신의 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길. 당신의 꿈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길.” 윤동주는 과거에 박제된 채 머물지 않는다. 랩을 즐겨 듣는 지금의 청춘들이 마음에 품고, 닮고 싶은 인물로 환생한다.
그동안 과거 인물을 추억하는 콘텐츠와 문화 행사는 많았다. 흔히 ‘탄생 주년’ ‘서거 주기’란 타이틀과 함께 화려하게 펼쳐졌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예술가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게 많았다. 공감의 수단과 방향까지 과거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업적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인물의 삶을 추적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콘텐츠는 진화 중이다. 기술뿐만 아니라 관점도 바뀌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라 예술가 본인의 시선으로 스토리텔링을 한다. 이번 김광석 방송도 온전히 그의 시선에 의존한다. 보는 사람들은 ‘김광석이 살아있었다면 정말 저렇게 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감정을 이입했다.
이들의 삶과 이야기는 현대의 청춘들과 시대를 뛰어넘어 만난다. 지난해 영화 ‘동주’의 관객 수가 117만명을 넘어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는 이 시대의 청춘과 예술가들에게 사유의 파문을 일으킨다. 그들은 같은 마음으로 고민하게 된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씌어진 시)
김광석을 환생시킨 프로그램은 동일한 기법으로 또 다른 문화예술인을 되살려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가장 보고 싶은 인물’을 뽑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애틋한 사람들이 거론되고 있다. 유재하, 신해철, 최진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가사처럼 우리는 늘 이별하며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중은 가버린 사람들에 대한 송가를 끊임없이 부를 것이며, 그들은 기적처럼 찾아올 것이다. 김광석이 이날 방송에서 했던 말처럼. “또 모르죠. 어느 세월에 언젠가 다시 만나지 않겠어요. 아쉬워 마세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