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소.”

[취재수첩] 어느 공무원의 부고
2009년 3월 기획재정부를 갓 출입하기 시작한 기자가 만난 국제금융국장의 첫마디는 따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센 파도가 한국을 막 휩쓸고 지나간 당시 원·달러 환율이 최고점을 찍는 등 외환시장은 초비상이었다. 국제금융국장으로서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상황에서 그는 국제금융의 ‘ㄱ’자도 모르는 기자를 성심성의껏 대했다. 자신에게 득(得)이 될 기자만 골라 만나는 다른 고위직 공무원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 ‘외환보유액’ 등을 진지하게 설명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의 이름은 김익주다. 1982년 공직에 입문해 기재부에 몸담은 뒤 작년 6월 국제금융센터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특유의 겸손함과 소탈함으로 선후배와 기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유난히 운동을 좋아해 아침 일찍 땀에 흠뻑 젖은 채 출근하던 모습도 기억 난다. 하지만 자기 공치사엔 약했다. 평소에도 “공을 앞세우려고 하면 사심(私心)이 들어간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그래서일까. 외국인의 자금유출에 대비할 수 있는 카드인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만든 주역이 그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2010년 미국 정부와 의회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에 나서면서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과 이란으로의 수출길이 막혔을 때, 그는 이란 중앙은행의 원화 계좌를 국내 은행에 개설해 수출대금을 정산하는 ‘묘안’을 내놨다. 이 역시 그의 작품이라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지난 2일 저녁, 그의 휴대전화 번호로 문자메시지가 왔다. ‘본인상’을 알리는 문자였다. 향년 57세. 그는 지난 2년간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외롭게 암 투병 생활을 했다. 이 때문에 오랜 지기인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부고를 접하고서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오열했다고 한다. 기재부에서 함께 근무한 손병두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은 “본인의 고민을 남에게 알리지 않는 성격이었는데…”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빈소엔 선·후배, 동료 공무원들의 발길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신영 기자 금융부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