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비누로 빨래문화 바꾼 '하이타이'의 아버지
‘하이타이의 아버지’로 불리는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이 5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192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영업의 귀재로 불렸다. 1953년 락희화학(현 LG화학)에 합류한 그는 영업부장으로 일했다.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을 돌며 상인들과 인간관계를 맺었다. 얼굴을 익히고, 대화하고, 때론 선물 공세도 폈다. 락희칫솔 등 락희 제품을 구멍가게에까지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이타이 개발은 전략가 허신구의 강점을 보여준 사례다. 국내에는 세제가 없던 1962년 동남아시장 출장길에 그는 가루로 빨래하는 것을 봤다. 거품이 나면서 때가 빠지는 걸 보고 귀국해 보고서를 썼다. “양잿물에 끓이고 방망이질하고 비틀어 짜는 빨래 방법에 비하면 얼마나 세련됐는지 우리도 그 합성세제라는 걸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내부에는 반대 목소리도 높았다. 세탁기도 없고, 빨랫비누를 대량생산하는 상황에서 ‘무슨 가루비누냐’고 반발했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고 1965년 경영진을 설득했다.

또 다른 숙제가 있었다. 경쟁회사 애경유지보다 빨리 출시하는 것이었다. 허 회장은 애경이 기술을 가져올 미국이 아니라 일본을 택했다. 일본에서는 가장 빨리 기계를 만들어줄 회사를 찾아냈다. 일본증류주식회사에서 기계를 들여와 1966년 4월10일 국내 최초 합성세제인 하이타이와 뉴힛트를 시장에 내놨다.

출시 후에도 상황은 어려웠다. 하이타이가 안 팔렸다.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자 고인은 다시 영업인으로 돌아갔다. “소비자가 안 오면 우리가 찾아간다”며 도매상과 구멍가게에 직원들을 보냈다. 주택가 골목을 찾아다니며 주부들 앞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하이타이’ 세탁 방법을 전파했다. 이후 하이타이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하이타이는 LG그룹이 사업 영역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락희유지, 금성전선을 거쳐 1971년 다시 고향인 락희화학 사장으로 돌아왔다. 1980년 2월까지 만 9년을 재직하며 1970년대 화학산업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첨단산업연구단지 중앙연구소도 고인의 작품이다. 무역을 알았던 그는 락희화학을 종합화학 및 무역회사로 성장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1974년 2월에는 락희화학을 주식회사 럭키로 바꿨다.

1980년대에는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감량경영을 하고, 사업부 책임경영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1973년 수출유공 동탑훈장, 1983년 발명의 날 금탑산업훈장 등을 받았다.

그는 1995년 구자경 LG 명예회장과 함께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차세대 경영인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고인은 LG를 공동창업한 고 허만정 회장의 넷째 아들이다. 지난 3일에는 5남 허완구 승산 회장이 별세했다. 허만정 창업자의 아들 여덟 명 가운데 장남 허정구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 차남 허학구 전 새로닉스 회장, 3남 허준구 전 GS건설 명예회장은 오래전 고인이 됐다. 6남 허승효 알토 회장, 7남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8남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 등은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유족으로는 아들인 허경수 코스모 회장, 허연수 GS리테일 사장과 딸 연호·연숙씨, 사위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 박태영 흥아산업 사장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발인은 8일이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