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포세권' 회사 다니는 맛에 '월요병' 싹~포켓몬 잡으려다 쾅!…"휴~사람 잡을 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포켓몬고 열풍…게임에 빠진 직장인들
우리 회사는 '포켓몬고' 명당
남들은 어렵게 얻는 아이템, 책상·옆 빌딩 집중 출몰 '대박'
주변 지인들 부러움 한몸에
이러려고 게임했나 자괴감…게임하다 넘어지고 사고 일쑤
"망나뇽 떴다" 우르르 몰려가고 "나이 들어 뭐하는지…ㅜㅜ"
우리 회사는 '포켓몬고' 명당
남들은 어렵게 얻는 아이템, 책상·옆 빌딩 집중 출몰 '대박'
주변 지인들 부러움 한몸에
이러려고 게임했나 자괴감…게임하다 넘어지고 사고 일쑤
"망나뇽 떴다" 우르르 몰려가고 "나이 들어 뭐하는지…ㅜㅜ"
‘포세권’ ‘포수저’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가 인기를 끌면서 생긴 신조어들이다. ‘포세권’은 게임에 필수도구인 몬스터볼을 얻을 수 있는 ‘포켓스톱’과 역세권을 합친 단어로, 아이템이 많은 곳을 역세권에 빗대 ‘포세권’으로 부른다. 또 ‘포세권’에 살고 있거나 포켓몬 캐릭터가 출몰하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게임에 유리하다는 뜻에서 ‘포수저(포켓몬과 금수저의 합친 말)’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난달 24일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포켓몬고의 사용자(다운로드 수)가 10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10~20대뿐만 아니라 30~40대 김과장 이대리들도 푹 빠졌다. 게임으로 활력소를 찾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게임 덕분에 즐거운 회사 출근”
무역회사에 다니는 한모 대리(31)는 요즘 회사 가는 길이 즐겁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그의 회사가 포켓몬고 명당이어서다. 포켓몬고가 정식 출시되자마자 게임을 시작한 그지만 정작 집 주변엔 포켓스톱이 없어 포켓몬고를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포켓몬고를 켜본 한 대리는 쾌재를 불렀다. 한 대리 책상에서 옆 빌딩에 있는 포켓스톱이 잡히는 것을 확인한 것. “가만히 제 책상에 앉아있기만 했는데 몬스터볼도 얻고 포켓몬도 몇 마리 잡을 수 있었어요.” 그날 이후 한 대리는 틈날 때마다 책상에서 포켓몬고를 즐긴다. “포켓몬고 덕분에 ‘월요병’도 사라졌습니다. 제가 이렇게 출근을 좋아하게 될지 미처 몰랐네요.”
제일기획에 다니는 박모씨는 지인들로부터 “너희 회사 부럽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서울 이태원에 있는 본사가 포켓몬고 명당으로 소문 나서다. 박씨는 평소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포켓몬고는 예외였다. “주변 동료들과도 한층 더 친해진 것 같아요. ‘몇 마리 잡았느냐’고 대화할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김모 대리(30)는 업무로 지치고 피곤할 때마다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미니 게임을 즐긴다. 카카오게임 등 1분 안팎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게 큰 장점이다. 김 대리는 “졸음이 오는 오후 시간대에 1분 게임을 하고 오면 잠도 깨고 기분 전환도 된다”며 “업무 효율이나 집중도가 올라가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신모 과장(36)은 지난달부터 스마트폰 두 대를 쓰고 있다. 워낙 스마트폰 게임을 좋아해 쉬는 시간 틈틈이 게임을 하는데, 배터리가 너무 금방 닳는 게 문제였다. 게임이 자주 버벅거리기도 했다. 이왕이면 최적화된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게임용으로 쓸 스마트폰을 따로 구입했다. “업무는 원래 쓰던 폰으로 하고, 새로 산 스마트폰으론 게임만 합니다. 화면도 기존 폰보다 커서 게임할 맛이 납니다. 여자 친구는 한심하게 생각하지만, 게임기 한 대를 산 걸로 치면 괜찮은 투자란 생각입니다.”
포켓몬 잡느라 지각·부상
유통업체에 다니는 윤모 대리(31)는 지난주 지각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포켓몬고 게임을 하던 중 지하철역에 포켓몬이 출몰해서다. 처음엔 이브이 한 마리만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포켓몬을 포획한 뒤 다시 지하철에 탔는데, 다음역에서 파이리가 나타났다. 포켓몬을 잡으려고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다 결국 30분가량 늦었다. “포켓몬을 잡는 데 열중하느라 지각한 줄도 몰랐어요. 그 뒤론 출근길에선 게임을 자제하고 퇴근길에 마음껏 하고 있어요.”
박모 과장(35)은 얼마 전 포켓몬을 잡겠다고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스마트폰을 보고 걷다가 골목길에서 나오는 차를 못 보고 부딪힌 것.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발목에 금이 가서 깁스를 해야 했다. “주변에서 왜 다쳤느냐고 물어보는데 차마 포켓몬 때문이라고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앞으로 게임은 좀 자제해야겠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포켓몬고 게임을 즐기자 이모 대리(33)도 게임을 하기 위해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았다. 게임을 작동시키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포켓몬고가 아니라 비슷한 이름의 다른 게임이었다. 이 대리 같은 사람들을 유인해 다운하게 하고는 개인정보를 캐내려는 수법이었다. “알자마자 바로 지우고 신고했지만 며칠간 개인정보가 털린 건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게임도 쉽게 따라하지 못하겠네요.”
××전자의 김모 대리(28)는 포켓몬고를 즐기다가 심한 자괴감을 느낀 경우다. 지난 주말 백화점에 간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포켓몬고 앱(응용프로그램)을 켰다. 주위엔 김 대리처럼 포켓몬을 잡는 사람이 여러 명 보였다. 그중 한 명이 “망나뇽이다!”며 소리를 질렀다. 망나뇽은 가장 잡기 힘든 희귀 포켓몬 중 하나다. 외침을 들은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쪽으로 우르르 뛰어갔다. 김 대리도 헐레벌떡 달려갔다. 스마트폰 화면을 열심히 뒤졌지만 여러 사람이 몰린 탓인지 망나뇽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몰려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는 걸 보니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군요. 게임하는 모습이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게임 때문에 웃고 울고
지난해 모 기업에 입사한 이모 사원(30)은 회식이 끝나면 같은 팀의 몇몇 선배들이 우르르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함께 PC방에 가는 걸 보고 스타크래프트를 배웠다. 한 선배가 “이 회사에선 당구는 못 쳐도 ‘스타’를 못하면 사회생활이 힘들 거다”고 조언해서다. 리그오브레전드(LOL), 오버워치, 마구마구 등 온갖 온라인 게임의 고수인 그는 몇 주 만에 스타크래프트를 정복했고, 올초 신년회 겸 회식 때 선배들과 함께 PC방에 갔다. 그는 그 자리에서 상사들의 본진을 잇따라 박살 내며 의기양양하게 “보셨죠, 제 실력을!”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좌절은 다음날부터 시작됐다. 수많은 일이 쏟아져 눈코 뜰 새 없이 일해야 했다. 참다못해 한 선배에게 물어보니 “후배가 선배를 그렇게 ‘발라버리면’(박살낸다는 뜻) 감정 상하지. 선배들 본진은 살짝 돌아서 피해가는 센스 정도는 있어야지”라고 귀띔했다. “아, 제가 눈치 없이 너무 설쳤나 봐요. 엉엉.”
한 기업의 인턴 박모씨(27)는 최근 스마트폰 게임 ‘내 꿈은 정규직’에 빠져 있다. 2015년 나온 이 게임은 취업준비생들의 입사를 위한 고통, 그리고 입사 뒤에도 생존을 위해 벌이는 젊은 직장인들의 생활을 게임으로 즐기는 방식이다. 지난해 두 차례나 기업체 인턴에 합격했지만 입사에 실패한 그는 “친구 얘기를 듣고 내려받았는데, 다운한 사람들이 100만명이 넘더군요. 저 같은 ‘미생’들이 많은 거 같아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위로도 됩니다.”
윤아영/정지은/이수빈 기자 youngmoney@hankyung.com
지난달 24일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포켓몬고의 사용자(다운로드 수)가 10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10~20대뿐만 아니라 30~40대 김과장 이대리들도 푹 빠졌다. 게임으로 활력소를 찾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게임 덕분에 즐거운 회사 출근”
무역회사에 다니는 한모 대리(31)는 요즘 회사 가는 길이 즐겁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그의 회사가 포켓몬고 명당이어서다. 포켓몬고가 정식 출시되자마자 게임을 시작한 그지만 정작 집 주변엔 포켓스톱이 없어 포켓몬고를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포켓몬고를 켜본 한 대리는 쾌재를 불렀다. 한 대리 책상에서 옆 빌딩에 있는 포켓스톱이 잡히는 것을 확인한 것. “가만히 제 책상에 앉아있기만 했는데 몬스터볼도 얻고 포켓몬도 몇 마리 잡을 수 있었어요.” 그날 이후 한 대리는 틈날 때마다 책상에서 포켓몬고를 즐긴다. “포켓몬고 덕분에 ‘월요병’도 사라졌습니다. 제가 이렇게 출근을 좋아하게 될지 미처 몰랐네요.”
제일기획에 다니는 박모씨는 지인들로부터 “너희 회사 부럽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서울 이태원에 있는 본사가 포켓몬고 명당으로 소문 나서다. 박씨는 평소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포켓몬고는 예외였다. “주변 동료들과도 한층 더 친해진 것 같아요. ‘몇 마리 잡았느냐’고 대화할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김모 대리(30)는 업무로 지치고 피곤할 때마다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미니 게임을 즐긴다. 카카오게임 등 1분 안팎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게 큰 장점이다. 김 대리는 “졸음이 오는 오후 시간대에 1분 게임을 하고 오면 잠도 깨고 기분 전환도 된다”며 “업무 효율이나 집중도가 올라가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신모 과장(36)은 지난달부터 스마트폰 두 대를 쓰고 있다. 워낙 스마트폰 게임을 좋아해 쉬는 시간 틈틈이 게임을 하는데, 배터리가 너무 금방 닳는 게 문제였다. 게임이 자주 버벅거리기도 했다. 이왕이면 최적화된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게임용으로 쓸 스마트폰을 따로 구입했다. “업무는 원래 쓰던 폰으로 하고, 새로 산 스마트폰으론 게임만 합니다. 화면도 기존 폰보다 커서 게임할 맛이 납니다. 여자 친구는 한심하게 생각하지만, 게임기 한 대를 산 걸로 치면 괜찮은 투자란 생각입니다.”
포켓몬 잡느라 지각·부상
유통업체에 다니는 윤모 대리(31)는 지난주 지각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포켓몬고 게임을 하던 중 지하철역에 포켓몬이 출몰해서다. 처음엔 이브이 한 마리만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포켓몬을 포획한 뒤 다시 지하철에 탔는데, 다음역에서 파이리가 나타났다. 포켓몬을 잡으려고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다 결국 30분가량 늦었다. “포켓몬을 잡는 데 열중하느라 지각한 줄도 몰랐어요. 그 뒤론 출근길에선 게임을 자제하고 퇴근길에 마음껏 하고 있어요.”
박모 과장(35)은 얼마 전 포켓몬을 잡겠다고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스마트폰을 보고 걷다가 골목길에서 나오는 차를 못 보고 부딪힌 것.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발목에 금이 가서 깁스를 해야 했다. “주변에서 왜 다쳤느냐고 물어보는데 차마 포켓몬 때문이라고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앞으로 게임은 좀 자제해야겠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포켓몬고 게임을 즐기자 이모 대리(33)도 게임을 하기 위해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았다. 게임을 작동시키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포켓몬고가 아니라 비슷한 이름의 다른 게임이었다. 이 대리 같은 사람들을 유인해 다운하게 하고는 개인정보를 캐내려는 수법이었다. “알자마자 바로 지우고 신고했지만 며칠간 개인정보가 털린 건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게임도 쉽게 따라하지 못하겠네요.”
××전자의 김모 대리(28)는 포켓몬고를 즐기다가 심한 자괴감을 느낀 경우다. 지난 주말 백화점에 간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포켓몬고 앱(응용프로그램)을 켰다. 주위엔 김 대리처럼 포켓몬을 잡는 사람이 여러 명 보였다. 그중 한 명이 “망나뇽이다!”며 소리를 질렀다. 망나뇽은 가장 잡기 힘든 희귀 포켓몬 중 하나다. 외침을 들은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쪽으로 우르르 뛰어갔다. 김 대리도 헐레벌떡 달려갔다. 스마트폰 화면을 열심히 뒤졌지만 여러 사람이 몰린 탓인지 망나뇽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몰려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는 걸 보니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군요. 게임하는 모습이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게임 때문에 웃고 울고
지난해 모 기업에 입사한 이모 사원(30)은 회식이 끝나면 같은 팀의 몇몇 선배들이 우르르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함께 PC방에 가는 걸 보고 스타크래프트를 배웠다. 한 선배가 “이 회사에선 당구는 못 쳐도 ‘스타’를 못하면 사회생활이 힘들 거다”고 조언해서다. 리그오브레전드(LOL), 오버워치, 마구마구 등 온갖 온라인 게임의 고수인 그는 몇 주 만에 스타크래프트를 정복했고, 올초 신년회 겸 회식 때 선배들과 함께 PC방에 갔다. 그는 그 자리에서 상사들의 본진을 잇따라 박살 내며 의기양양하게 “보셨죠, 제 실력을!”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좌절은 다음날부터 시작됐다. 수많은 일이 쏟아져 눈코 뜰 새 없이 일해야 했다. 참다못해 한 선배에게 물어보니 “후배가 선배를 그렇게 ‘발라버리면’(박살낸다는 뜻) 감정 상하지. 선배들 본진은 살짝 돌아서 피해가는 센스 정도는 있어야지”라고 귀띔했다. “아, 제가 눈치 없이 너무 설쳤나 봐요. 엉엉.”
한 기업의 인턴 박모씨(27)는 최근 스마트폰 게임 ‘내 꿈은 정규직’에 빠져 있다. 2015년 나온 이 게임은 취업준비생들의 입사를 위한 고통, 그리고 입사 뒤에도 생존을 위해 벌이는 젊은 직장인들의 생활을 게임으로 즐기는 방식이다. 지난해 두 차례나 기업체 인턴에 합격했지만 입사에 실패한 그는 “친구 얘기를 듣고 내려받았는데, 다운한 사람들이 100만명이 넘더군요. 저 같은 ‘미생’들이 많은 거 같아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위로도 됩니다.”
윤아영/정지은/이수빈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