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를 이기는 도쿠가와 리더십(6) 나보다 강한 자에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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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를 이기는 도쿠가와 리더십(6) 나보다 강한 자에겐 배운다
장기전에서 이기려면 '여유'를 갖고 처신하라 100여년간 이어진 전국시대에는 무용과 지략이 뛰어난 장수들이 많았다. 일본 전국시대의 통일을 완성한 3대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일본 천하통일을 완수했다. 두 장수가 무용과 지략에서 앞선 점도 많았으나 최후의 승자는 이에야스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557년 17세에 첫 출전한 뒤 죽기 전 해인 1615년 오사카 여름전투까지 57년간 전쟁터에서 생애를 보냈다. 승리의 기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무장’으로 평가받는 이에야스는 배움에도 부지런했다. 전국시대를 살고간 자기보다 강한 사람들의 강점은 철저하게 분석하고, 받아들였다.
일본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모리 모토나리(1497~1571)와 다케다 신겐(1521~1573)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는 이에야스보다 다소 앞선 시기에 활약한 무장이다. 그는 전국시대의 수 많은 무장들에게 장수의 삶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모리 모토나리는 스에 하루카타, 오우치 요시나가, 아마코 요시히사 등을 멸망시키고, 산인 산요 10개국을 거느린 다이묘로 성장했다. 세 아들 다카모토, 모토하루, 다카카게에게 남긴 세 자루의 화살 일화는 일족단결의 교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모리 모토나리는 뛰어난 병법으로 전국시대 다이묘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와라성 공격 당시 모토나리의 아들 다카카게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모리 모토나리는 포위전의 명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학문을 중시하고 즐겼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모토나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려고 힘썼다.
모리 모토나리가 세 아들에게 남긴 ‘유훈장’이 특히 유명하다. 60세 이후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유언장 내용에 따르면 모토나리는 독실한 불교도였으며, 인과응보를 두려워했다. 그는 많은 인명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장수의 운명에 대해 “업보를 자신의 대에 다 갚을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썼다.
모리 모토나리는 장남에게 “우리 일족에게 호의를 가진 자는 다른 지방은 물론 우리 영지 안에도 없다”고 주지시켰다. 즉, 가신의 충성이라는 것도 “사람에 따라 시절에 따라 변하는 법” 이며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난세를 살아가면서 자신 외에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지혜를 갖게 됐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남는 ‘생존법’을 터득한 셈이다. 모토나리는 이에야스에게도 큰 교훈을 남겼다. 알 수 없는 운명의 지배자에 대한 경외심과 자기 자신 외에 아무도 믿지 않는 태도였다.
모리 모토나리보다 조금 늦게 태어난 다케다 신겐(1521~1573)도 이에야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은 전국시대 최강의 무장으로 인정받는 전설적인 장수이다. 그는 부친 노부토라를 폐위시키고 시나노 지역 일대를 지배했다. 우에스기 겐신과 대립해 수 차례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교토 진출을 꾀하면서 마카타가하라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쳐부수고 미카와성에 입성했다. 자신의 장남인 요시노부를 반역죄로 몰아 자결 시킬 정도로 권력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다케다 신겐은 일본 전국 통일의 길을 연 인물로, 손자병법의 풍림화산(風林火山)을 도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겐은 일본 최고의 전략가, 가이의 호랑이 등으로 불린다. 전국시대에 최초로 기마전법을 도입해 강력한 공격전으로 이를을 떨쳤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케다 신겐의 ‘장기전 전법’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여유’를 갖고 전투에 임해야 한다는 게 신겐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는 “장기전에서 승리하려면 여유를 가져야 한다” 면서 “전투는 70% 승률을 목표로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장기전을 하다 보면 패하는 전투도 있는 만큼 70%의 승률이면 괜 찮은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도 다케다 신겐 덕분이다. 신겐은 평소 가신들에게 “앞으로의 전투는 적확한 정보가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군과 적군과의 객관적인 전력뿐 아니라 전쟁터를 둘러싼 민심 동향은 물론 적장의 마음까지 읽을 줄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오늘날 국가간,글로벌 기업간 경쟁에서도 한번쯤 되새겨 볼만하다.
글=최인한 한경닷컴 대표 janus@hankyung.com
그림=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장기전에서 이기려면 '여유'를 갖고 처신하라 100여년간 이어진 전국시대에는 무용과 지략이 뛰어난 장수들이 많았다. 일본 전국시대의 통일을 완성한 3대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일본 천하통일을 완수했다. 두 장수가 무용과 지략에서 앞선 점도 많았으나 최후의 승자는 이에야스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557년 17세에 첫 출전한 뒤 죽기 전 해인 1615년 오사카 여름전투까지 57년간 전쟁터에서 생애를 보냈다. 승리의 기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무장’으로 평가받는 이에야스는 배움에도 부지런했다. 전국시대를 살고간 자기보다 강한 사람들의 강점은 철저하게 분석하고, 받아들였다.
일본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모리 모토나리(1497~1571)와 다케다 신겐(1521~1573)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는 이에야스보다 다소 앞선 시기에 활약한 무장이다. 그는 전국시대의 수 많은 무장들에게 장수의 삶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모리 모토나리는 스에 하루카타, 오우치 요시나가, 아마코 요시히사 등을 멸망시키고, 산인 산요 10개국을 거느린 다이묘로 성장했다. 세 아들 다카모토, 모토하루, 다카카게에게 남긴 세 자루의 화살 일화는 일족단결의 교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모리 모토나리는 뛰어난 병법으로 전국시대 다이묘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와라성 공격 당시 모토나리의 아들 다카카게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모리 모토나리는 포위전의 명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학문을 중시하고 즐겼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모토나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려고 힘썼다.
모리 모토나리가 세 아들에게 남긴 ‘유훈장’이 특히 유명하다. 60세 이후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유언장 내용에 따르면 모토나리는 독실한 불교도였으며, 인과응보를 두려워했다. 그는 많은 인명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장수의 운명에 대해 “업보를 자신의 대에 다 갚을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썼다.
모리 모토나리는 장남에게 “우리 일족에게 호의를 가진 자는 다른 지방은 물론 우리 영지 안에도 없다”고 주지시켰다. 즉, 가신의 충성이라는 것도 “사람에 따라 시절에 따라 변하는 법” 이며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난세를 살아가면서 자신 외에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지혜를 갖게 됐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남는 ‘생존법’을 터득한 셈이다. 모토나리는 이에야스에게도 큰 교훈을 남겼다. 알 수 없는 운명의 지배자에 대한 경외심과 자기 자신 외에 아무도 믿지 않는 태도였다.
모리 모토나리보다 조금 늦게 태어난 다케다 신겐(1521~1573)도 이에야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은 전국시대 최강의 무장으로 인정받는 전설적인 장수이다. 그는 부친 노부토라를 폐위시키고 시나노 지역 일대를 지배했다. 우에스기 겐신과 대립해 수 차례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교토 진출을 꾀하면서 마카타가하라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쳐부수고 미카와성에 입성했다. 자신의 장남인 요시노부를 반역죄로 몰아 자결 시킬 정도로 권력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다케다 신겐은 일본 전국 통일의 길을 연 인물로, 손자병법의 풍림화산(風林火山)을 도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겐은 일본 최고의 전략가, 가이의 호랑이 등으로 불린다. 전국시대에 최초로 기마전법을 도입해 강력한 공격전으로 이를을 떨쳤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케다 신겐의 ‘장기전 전법’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여유’를 갖고 전투에 임해야 한다는 게 신겐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는 “장기전에서 승리하려면 여유를 가져야 한다” 면서 “전투는 70% 승률을 목표로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장기전을 하다 보면 패하는 전투도 있는 만큼 70%의 승률이면 괜 찮은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도 다케다 신겐 덕분이다. 신겐은 평소 가신들에게 “앞으로의 전투는 적확한 정보가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군과 적군과의 객관적인 전력뿐 아니라 전쟁터를 둘러싼 민심 동향은 물론 적장의 마음까지 읽을 줄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오늘날 국가간,글로벌 기업간 경쟁에서도 한번쯤 되새겨 볼만하다.
글=최인한 한경닷컴 대표 janus@hankyung.com
그림=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