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부터 총 15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도 다른 기관투자가, 개인투자자와 마찬가지로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투자은행(IB)이 발행하는 어음을 사들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초대형 IB는 올해 어음발행을 통해 총 48조원의 투자자금을 마련, 수익률 경쟁에 본격 돌입한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초대형 IB 요건을 충족한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5개사는 달라지는 업무환경에 맞춰 새로운 사업 진용을 짜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어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과 이 자금의 투자처를 놓고 내부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48兆 실탄' 장착하는 초대형 IB…퇴직연금서 자금 수혈 노린다
초대형 IB는 이르면 6월부터 만기 1년 이하짜리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이들은 약 2%대의 낮은 어음금리로 자기자본의 최대 두 배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를 기업금융 부동산 해외 인프라 등 다양한 곳에 투자해 사업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5개사의 자기자본을 감안하면 약 48조원의 ‘실탄’이 주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새로 마련해준 사업 영역이 안성맞춤인 것만은 아니다. 불편한 대목도 많다. 이 때문에 대형 증권사들은 올 상반기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에 맞춰 그동안 금융투자협회와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여러 차례 회의를 해왔다. 이들은 초대형 IB에 대한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8일 금융위원회에 제출한다.

업계는 우선 “퇴직연금도 증권사가 발행한 어음에 투자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규정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의 의견을 낼 계획이다. 현재 ‘퇴직연금 감독규정’에는 퇴직연금이 투자할 수 있는 상품 목록에 증권사의 발행어음이 없다. 하지만 증권사 발행어음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품이므로 퇴직연금 투자대상으로 적합하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주장이다.

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투자처 제한이다. 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은 기업대출 등 기업금융에 최소 50%까지 투자하도록 돼 있다. 나머지는 개인대출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 투자할 수 있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 투자는 10%까지만 가능하다. 증권사 투자가 부동산에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기준이 지나치게 경직적이라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금융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 투자를 제한하면 운용수익률을 맞추기 어렵다”며 “상한선은 두되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또 유동성 지표를 개선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시행령에 따르면 증권사는 만기 1·3개월 부채에 맞춰 동일한 수준의 유동성 자산을 보유해야 한다. 투자자의 환매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만기가 짧은 자금(부채)은 현금성 자산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 같은 단기자산에 투자하라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동성 지표를 맞추려면 해외 인프라 투자 등 초대형 IB로서 해야 할 장기투자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고 토로했다.

금융위는 이 같은 의견을 받는 대로 반영 여부를 검토한 뒤 규제개혁위원회를 거쳐 4월께 최종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