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이번엔 '법인세 실험'
스위스가 특정 해외 기업에 선별적으로 감세 혜택을 주는 것을 없애고 법인세율을 낮추는 세제개편안을 두고 오는 12일(현지시간) 국민투표를 한다.

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번 개편안은 개별 주(州)의 선별적 감세 권한을 폐지하고 주별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예컨대 제네바주 정부는 일반 기업에 24.16%의 법인세를 부과하지만 지주회사나 합작회사 등의 방식으로 진출한 다국적기업엔 평균 11.6%의 법인세를 매긴다. 스위스에서 생산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 관행을 막고 국내외 모든 기업에 13.49% 세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스위스에서 ‘특혜’를 받아온 기업은 전체의 47.74%에 달한다.

개편안이 가결되면 스위스 주정부와 기업에 5년간의 이행기간이 주어진다. 주 정부는 국제 표준에 따라 연구개발(R&D) 투자 비용의 150%까지 세액을 공제하고, 15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 감세 혜택을 줄 수 있다. 지식재산권으로 올린 수익에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특허박스제’도 도입한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는 전체 평균 법인세율이 18%에서 14%로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스위스는 2007년부터 스위스 일부 주에서 특정 해외 기업에 0%의 법인세율을 부과하는 것을 놓고 마찰을 빚어왔다. 실제 생산활동을 하는 유럽 내 기업보다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등의 방식으로 세율이 낮은 스위스로 소득을 이전시키고 세원을 잠식해온 일부 해외 대기업에 혜택이 주어진다는 이유에서다.

FT는 이번 개편안이 부결되면 EU가 스위스를 조세회피처 관련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등 제재를 가하면서 기업이 이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르주 달 부스코 칸톤주 금융장관은 “6만2000여개의 일자리가 해외 기업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데 (개편안이 부결되면) 이들 일자리 중 상당수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등 중도 좌파 정당들은 이번 개편안으로 연방정부 부담이 늘고 부족분을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민당은 30억스위스프랑(약 3조5300억원)의 세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