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에서 만난 류창완 센터장은
최근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에서 만난 류창완 센터장은 "CES는 최고의 창업교육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 최혁 기자
[ 김봉구 기자 ] “한양대가 국제가전전시회(CES)에 참가했네요, 그것도 2년 연속으로.” “이례적인 겁니까?” “대학으로선 그렇죠. 아닌가요?” “행사명은 가전전시회, 전자박람회인데 가보면 알짜는 스타트업이거든요.” “아, 청년창업이 포인트군요. 성과가 있었나요?” “있었죠. 한데 그게 핵심은 아닙니다.”

지난달 학생들을 인솔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을 다녀온 류창완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장(사진)의 답변은 예상과 좀 달랐다. 성과 나열은 뒤로 쑥 뺐다. “센터에서 정리해놓은 자료가 있으니 그걸 보면 된다”고만 했다.

실적이 부족했던 건 아니다. CES에서 스타트업관 부스를 운영한 한양대는 앞선 기술로 주목받았다. 산업공학과 재학생 김재혁 씨가 창업한 ‘레티널’의 증강현실(AR) 안경은 화웨이로부터 중국 시장 진출 러브콜을 받았다. 구글 인터렉션리서치도 세부 업무협력 미팅을 제안해왔다. 2년 연속 참가한 ‘티크로스’는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스마트 정수 텀블러로 대형 유통업체 코스트코, 아마존 등에게서 1000만 달러(약 115억 원)어치 납품 주문을 받았다. 티크로스는 이 대학 경영학부 85학번이자 한양스타트업아카데미를 1기로 졸업한 김정용 대표가 창업한 동문기업이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의 한양대 스타트업관 운영 모습. /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 제공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의 한양대 스타트업관 운영 모습. /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 제공
그럼에도 류 센터장은 “대학은 CES 참가 의미를 달리 봐야 한다. 제품 홍보, 투자 유치, 계약 체결의 장으로만 보면 학생들 체험 폭이 좁아진다”고 짚었다. 그가 거듭 힘줘 말한 대목은 “CES는 최고의 스타트업 체험장이자 교육플랫폼”이라는 것이었다.

“스타트업관은 생동감이 있어요. 스마트카, 사물인터넷(IoT), 드론… 몇 평 안 되는 부스들이 행사장에 꽉 들어찼죠. 눈빛들이 반짝거립니다.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같은 곳은 부럽더군요. 정부가 스타트업들을 150곳씩 데려왔습니다. 이런 나라들이 CES에 홍보하러 왔을까요? 아니거든요.”

그러면 왜? “가서 보고 배우라는 거죠. 네트워킹도 하고.” 류 센터장은 단언했다. “CES는 학습의 장이에요. 신기술을 벤치마킹, 제휴, 접목, 융합하는 것. 독일과 프랑스가 바라는 건 그겁니다. 5년쯤 전부터 CES 스타트업관 참여 업체가 엄청나게 늘었어요. 스타트업 부스 하나, 하나는 진짜 작은데 좋은 아이디어가 정말 많죠.”

류창완 센터장은 한양대 사례를 근거로
류창완 센터장은 한양대 사례를 근거로 "더 많은 한국 대학이 CES에 갔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 최혁 기자
올해 CES에 간 한양대 참가단은 30명, 그중 학생은 20명 내외였다. 류 센터장은 학생들을 5인1조로 짜 번갈아 부스를 지키게 했다. 이때를 제외한 시간은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각국 창업자들과 소통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으라는 취지였다.

“학생들한테 부스에만 있지 말고 돌아다녀보라고 했어요. ‘아, 세상에 정말 대단한 사람이 많구나.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하고 깨져봐야 돼요. 그러면서 사고 자체가 확 바뀌는 거죠. 한편으로는 우리 부스에 들른 사람들도 ‘원더풀’ 그러거든요. 이 방향이 맞구나, 학생들이 자신감을 얻기도 합니다.”

그가 CES를 최고의 창업교육 플랫폼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CES 참가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거나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한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훨씬 크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CES 다녀온 학생들이 꼭 창업하지 않아도 좋아요. 요는, 세상을 보는 눈과 인생의 생각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창업은 어디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와서 직접 부딪쳐보면 깨닫습니다. 그러면 접근법을 바꾸는 거죠. 공업수학, 미적분 수업 한 학기 듣는 것보다 4~5일 CES 와서 더 많이 배우는 면도 있어요.”

사고가 유연한 대학생 때 ‘머리를 꽝 때리는 강렬한 임팩트(충격)’를 경험해봐야 한다는 게 류 센터장의 생각. 그러려면 전세계 창업자들이 각자의 혼과 아이디어를 불어넣은 엑기스를 고루 접할 수 있는 CES만한 데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래서 한양대뿐 아니라 한국 대학들이 보다 많이 CES에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올해 CES에 참가한 국내 대학은 한양대를 비롯해 서울과학기술대, 특정 업체와 연계해 참가한 서울대 등 3개교뿐이었다.
류창완 센터장은
류창완 센터장은 "학생들이 강렬한 임팩트를 경험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CES가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 최혁 기자
“CES는 삼성전자,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가는 행사란 이미지가 있어요. 그런데 중국은 이번에 약 2000개 업체가 왔습니다. 우리도 가리지 말고 나가야죠. 한국 대학들이 효과를 잘 몰라서, ‘꼭 거기 가야돼?’ 할 수 있는데요. 여건이 되면 무조건 가야 합니다. 스타트업은 글로벌 경쟁, 밖으로 나가지 않고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류 센터장은 “학교 단위에선 보직교수가 판단할 텐데 스타트업 쪽은 창업 경험 있는 교수가 맡는 게 좋다. 창업의 맥을 짚고 시스템을 봐야 하니까”라고 귀띔했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다. “저도 대기업 입사해 직장생활 하다가 창업해서 코스닥 상장, 해외 투자 유치, 인수·합병(M&A), 매각까지 한 사이클을 겪어봤거든요.”

그는 “창업교육 성과가 뭐냐, 일자리 얼마나 만들었느냐”고 묻는 정책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당장의 수치만 체크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보자는 것이다.

“곧바로 창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창업자금 지원, 앤젤 투자, 벤처캐피털 등 시스템과 생태계가 만들어져야죠. 창업교육은 성교육과 똑같아요. 필수 소양교육이란 점에서요. 눈앞의 창업자 수에 너무 연연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창업교육의 1차 목표는 창업 상비군을 기르는 거니까요. 학부 수준에선 ‘매스(대중) 교육’, 다음 단계에서 ‘타깃 교육’ 식으로 이원화해야죠.”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