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두 딸에게 베트남어를 배우고 농고에 진학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 최혁 기자
“우리 딸, 베트남어를 열심히 배워봐.” “아빠, 저 영어도 못해요.” “괜찮아, 영어는 못해도 돼. 너 말고도 잘하는 애 많아.” “근데 왜 베트남어예요?” “친구들 중에 베트남어 잘하는 애는 없잖아.” “그건 그렇죠.” “그럼 베트남어 필요하면 너밖에 안 찾겠지? 영어랑 다르게.” “아!”

지난 8일 서울 중구의 카페에서 만난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사진)는 자신을 ‘굉장히 현실적인 아빠’라고 소개했다. 다음달 중3이 되는 첫째 딸에게 “쉬운 길을 찾아주고 싶어서” 베트남어를 배우길 추천했다. “베트남은 발전가능성이 높고 언어 전공자가 희소성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미래가 불확실하면 안정적인 길을 찾는다. 이 통념에 조 교수는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보통 말하는 ‘안정적’이란 게 정말 안정적인가요? ‘사’자 돌림 직업 가지면 안심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다, 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나 변호사는 자격증 있는 직업이잖아요. 은퇴가 없습니다. 나가는 사람은 없는데 계속 진입만 하는 구조인 거죠. 10년, 20년, 30년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조 교수가 조목조목 풀이했다. 단순한 이상론이 아닌 미래예측이다. 근거는 인구학. “인구구조 변화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그는 덧붙였다.

대신 그가 자녀에게 권하는 진로는 농업 분야다. 논리는 동일하다. 인구 변화에 따른 미래 전망이 밝아서다. “딸을 농고(農高)에 보내겠다”는 서울대 교수의 ‘섹시한’ 주장은 이렇게 나왔다. 첫째가 당장 내년 고교에 입학하는 터라 그건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둘째 딸에게 넘겼다.

조영태 교수는
조영태 교수는 "인구 변화를 잘 뜯어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최혁 기자
- 흥미롭다.

“특이한가? 현실적인 얘기다. 아빠로써 딸 둘을 어려운 길 보내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쉬운 길 찾아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인구변동 관점에서 사회변화를 보니까 성공하려면 희소성 있어야 한다는 답이 나오더라. 베트남어와 농고는 그에 걸맞은 선택이다.”

- 이색 주장인 듯한데.

“이른바 ‘사’자 직업이 왜 인기였나. 희소성 있기 때문이었다. 보장도 되고.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까? 아니다. 전문직이라고 하지만 본질은 자영업이다. 은퇴가 없다. 위에서 안 나가면 아래에서 들어가는 사람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농업은 정반대다. 우선 농사짓는 인구 자체가 얼마 안 된다. 그리고 연령대가 높다. 이 세대가 빠져나가면 더 이상 농사지을 사람도 없다. 과연 어느 쪽이 비전 있겠나.”

- 방향은 그렇게 간다 해도 좀 과장된 레토릭(표현) 아닌가.

“전혀. 표현보다는 농업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렇게 느낄 거다. 제가 농업 분야를 권하는 건 흙 파고 땅 일구라는 게 아니다. 농산업을 얘기하고 있다. 바이오, 유통, 수출 등이 모두 접목된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가장 발전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 중 하나가 바로 농산업이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는 다음달 창조농업선도고교 3곳의 문을 연다. 학비 전액 면제에 우수학생 해외연수, 정부 지원사업 우대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하지만 3곳 중 2개교 신입생 모집이 미달됐다. 조 교수는 “농업에 대한 우리사회의 선입견이 여전히 강하다”고 짚었다.

그러면 베트남어를 배우라는 건 무슨 얘기일까. 자신의 경험이 토대가 됐다. 그는 연구 안식년을 베트남으로 다녀왔다. 이 기간 베트남 정부의 인구정책 자문을 맡아 ‘넥스트 차이나’의 가능성을 봤다. 한국과 베트남 간 교류도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중간다리 역할을 할 사람이 드물다는 데 주목했다.

- 딸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딸이 ‘아빠, 저는 영어도 못해요’ 그러더라(웃음). 베트남 인구구조나 인력상황을 보면 앞으로 가능성과 기회가 열려있다. 게다가 저는 정책 자문하면서 현지에 네트워크도 쌓아놓았다. 이걸 잘 활용하면 얘가 굳이 한국에서 사교육 스트레스 받으면서 대학 가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베트남어를 잘 배워놓으면 말이다.”

- 사교육도 별로 권하지 않는다고.

“2002년생 이후 학령인구가 굉장히 줄었다. 앞으로 대입 경쟁률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힘들여 사교육 시킬 필요가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변호사 되라는 건 어려운 길 골라 가라는 거다. 사교육 많이 안 해도 된다, 농고 가라, 대신 베트남어 배워라… 이런 얘기는 애들 풀어주려는 게 아니라 굉장히 현실적인 선택이다.”

- 인구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만 ‘지체현상’이 있다. “앞으로 학벌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하면 “불확실한데 그나마 학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되묻더라.

“불확실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제도 변화가 없으면 이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래서 제도가 변해야 한다. 예컨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되는 선취업 후진학 제도가 도입되면 문화가 확 달라질 것이다. 자연히 수능도 사라지고 사교육 역시 줄어들 수 있다. 이걸 가능케 하는 핵심요인이 인구 변화다.”

- 서울대 교수 된 데도 운이 작용했다고. 지나친 겸양 아닌지?

“운이라기보다는 인구구조와 ‘인구학 박사’라는 희소성 덕분이었다. 저는 군대까지 다녀오고도 만 29세에 교수가 됐다. 미국에서 강의하다 서울대 교수로 온 게 31살 때였다. 제가 잘나서 그랬겠나? 아니다. 마침 그때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 교수들이 한꺼번에 은퇴했다. 교수를 대량으로 뽑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문이 넓어진 것이다. 서울대로 옮길 때도 비슷했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인구학 박사가 드물었다. 저 말고는 뽑을 사람이 없었다(웃음).”

조영태 교수는 한국사회 인구문제의 해법으로 '다운사이징'을 제시했다. / 최혁 기자
조영태 교수는 한국사회 인구문제의 해법으로 '다운사이징'을 제시했다. / 최혁 기자
저출산, 고령화, 학령인구 급감, 생산활동인구 감소, 그리고 인구절벽. 지금 한국사회는 요란한 경고음을 울려대는 중이다. 진단은 엇비슷하다. 어떤 대책을 내놓느냐가 관건이다. 《정해진 미래》를 쓴 조 교수는 이렇게 조언했다. “인구구조 변화를 뜯어보면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가능하게 바꿀 수 있다.”

- 미래예측에는 여러 팩터(요인)가 있다. 정치·경제·사회·기술 등등. 그런데 인구 팩터는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 대기업 강연을 한 적 있다. 자기네도 중장기 계획 세우면서 인구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하더라. 항상 인구는 늘어나고 시장도 성장세인 상황이었다는 거다. 제대로 대비를 안 한 거지. 대기업이 인구 팩터를 미처 인지 못했다는 사실에 도리어 제가 깜짝 놀랐다.”

- 대학 문제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에 설립 준칙주의를 시행해 대학 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기껏 20년 지났는데 이젠 신입생이 모자라 대학 문을 닫게 생겼다.

“인구 변화 추이를 전혀 안 봤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졌다. 큰 경제위기 직후 출산율이 급감한다는 건 인구학에서는 상식이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인구 팩터는 생각도 못했고 당연히 대비도 안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출산율이 확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 지금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정말 큰 문제가 있다. 젊은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이다. 특히 서울 집중. 지금 서울은 젊은이들의 블랙홀이다. 인(in)서울 대학으로, 노량진 고시촌으로 몰려온 젊은이들이 취업도 결혼도 못하고 있다. 정부는 젊은이들이 지방에 남을 수 있도록, 지방에서도 살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 서울로 가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대학을 맹목적으로 가서 그런 측면이 있다. 입학해서는 취업용 스펙을 쌓는다. 잘못된 선택이다. ‘취업 9종 세트’ 준비를 통해 길이 보이면 다행인데 그것도 아니다. 서울 블랙홀에 오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게 지방에 인프라를 갖추고 정주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아예 다른 길을 찾도록. 제가 농업 얘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영태 교수는
조영태 교수는 "'정해진 미래' 속에서 개인의 비전을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최혁 기자
그가 제시하는 인구학적 해법은 다운사이징(downsizing)이다. 출산율의 극적 반등이 어렵다면, 연간 40만 명대 신생아 수준을 꾸준히 유지해 한 세대(30년)를 이어주는 방법이 현실적이라고 봤다. “다운사이징 세대 진입 연령층의 과도기적 부양 부담을 덜어주는 사회적 논의도 요구된다”고 했다.

- 일자리가 급감하는 미래사회를 감안하면 출산율 저하가 문제라고만 하긴 어렵지 않나.

“그렇게 볼 여지도 있다. 다운사이징, 그러니까 ‘작은 국가’로 잘 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30년을 한 세대로 본다. 현재의 신생아 수를 한 세대 정도 일관되게 이어주면 그게 가능하다. 다만 부양인구 문제가 남는다. 인구가 뚝 떨어지는 경계의 초입에 있는 연령층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연착륙 고민이 필요하다.”

- ‘정해진 미래’를 바꿀 방법은 없을까.

“정해진 미래라고 하면 비관적 전망 같은데 그렇지 않다. 인구는 급격하게 바뀔 수 없어 상수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사회의 큰 틀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미래에 대해 나름의 대응을 하지 않나. 미래를 예측해 대응하면 그 시점의 미래가 얼마만큼 변해 있다. 그러면 현재 시점에서 다시 변화된 미래를 확인한 뒤 맞춰가는, 연쇄적으로 상호 변화하는 모델이다.”

- 미래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는 얘기로 들린다.

“미래 그 자체보다 대응방식이 관건이다. 불안하다고 해서 남들 하는 걸 덮어놓고 따라가지는 말자. 남이 하지 않는 것을 찾아 미래를 그려나가는 쪽을 권한다. 이때 인구 팩터를 잘 활용해 미래를 예측하면 대략의 길이 보일 것이다. 정해진 미래 속에 개인의 비전을 능동적으로 찾아가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