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폭탄' 뇌동맥류, 약물치료 가능성 열려
일본 연구진이 뇌동맥류의 진행 원리를 규명했다. 지금까지 치료법은 외과적 수술밖에 없었지만 이번 연구 성과로 약물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아오키 도모히로 교토대 뇌신경외과 조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뇌동맥류 진행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자매지인 ‘사이언스 시그널링’이 8일 온라인판에 게재했다.

뇌동맥류는 뇌혈관이 약해지거나 염증이 생겨 혹처럼 부풀어오르는 뇌혈관 질환이다. 뇌동맥류가 심해지면 뇌혈관이 터질 수 있는데 이게 뇌출혈이다. 뇌동맥류가 뇌출혈로 이어지면 100명 중 15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하지만 출혈이 일어나기 전까지 특별한 전조증상이 없어 ‘소리 없는 시한폭탄’이라고 불린다. 뇌출혈이 생겼을 때 제때 치료하지 않아 추가적인 혈관 파열이 일어나면 사망률이 80%를 넘는다. 한국에서 뇌동맥류 환자는 100만명으로 추정되며 연간 1만명 안팎의 뇌동맥류성 뇌출혈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오키 조교수는 ‘EP2’라는 단백질에 주목했다. EP2는 몸에서 경찰관 역할을 하는 백혈구의 일종인 마크로파지에 붙어 있는 단백질이다. 연구팀은 EP2가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들을 활성화해 뇌동맥류를 유발한다고 보고 뇌동맥류가 있는 실험용 쥐에게 EP2의 작용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그 결과 약물을 투여한 쥐는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부풀어오른 뇌혈관의 크기가 절반가량 작았다. 아오키 조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로 뇌출혈 전에 약물치료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말했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뇌동맥류 치료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두개골을 열어 집게처럼 생긴 클립으로 뇌동맥류 부분을 묶어 혈류를 차단하는 클립결찰술이다. 다른 하나는 다리의 대퇴동맥을 통해 코일을 집어넣어 뇌혈관까지 보내 문제 되는 부분의 혈류를 억제하는 코일색전술이다. 방법은 다르지만 부풀어오른 뇌혈관에 피가 더 이상 가지 못하도록 해 출혈을 막는 원리는 같다. 안재성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외과적 치료법도 뇌혈관 파열 전에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뇌동맥류는 뇌혈관이 파열되기 전까지 대개 증상이 없기 때문에 환자들이 미리 자각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뇌출혈이 발생하면 사망률도 높고 수술 후 후유증으로 장애가 생길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권한다.

조원상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동맥류를 조기에 발견하는 환자들은 다른 질병을 검사하려 CT(컴퓨터단층촬영) 또는 MRI(자기공명영상)를 촬영하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며 “뇌출혈 발생 위험이 커지는 40대부터는 정기적으로 뇌혈관 질환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