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도가사상을 붓질로 승화해온 이씨가 1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1층 한경갤러리에서 17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경희대 미대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이씨는 얕은 강가를 비롯해 나지막한 들녘, 깊은 계곡에 방긋 피어난 야생화와 풀을 서정적으로 화면에 풀어내는 중견 작가다. 한국화여성작가회 회장인 그는 전통 문인화를 바탕으로 현대적 채색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달 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거닐다’. 설악산 태백산 방태산 등 전국 명산과 계곡을 찾아다니며 사생한 야생초에 얽힌 이야기를 채색화 기법으로 화면에 되살려낸 근작 20여점을 걸었다. 자연을 막연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 거닐고 즐기는 기분으로 들꽃과 파릇한 풀잎 등을 생생하게 잡아낸 작품들이다.
작가는 직접 산행하면서 자연을 만나고, 거기서 느낀 자연의 생기를 시의 운율과 음악 리듬으로 되살려낸다. 그가 야생초 속에서 겨냥하는 것은 고운 자태가 아니라 자연과 소요하며 강렬한 생명의 내음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씨가 자연에서 도를 배우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을 채색하는 데 깊이 빠져든 이유는 뭘까. 그는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최고의 질서, 가장 안정적이고 궁극적인 존재여서 결국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채색화가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근원적 정서를 바탕으로 작업해왔다면 그 범주를 넘어 자연과 함께 동화되는 무위자연을 추구한다는 얘기다. 일본 채색화의 영향이 남아 있는 국내 화단의 사실회화 풍토에서 벗어나 우리 고유 채색화의 특징인 사의회화의 정수를 보여주려는 것도 그가 도법자연을 추구하는 이유다.
작품 제작 과정에선 전통 채색화를 되살리기 위해 문인화의 기법을 고집한다. 천이나 견(絹) 위에 한국 전통 채색화 물감인 수간채색을 사용하고, 밑그림 없이 필선 위주로 화면을 구성한다. 투명하고 맑은 느낌을 내기 위해 바탕색을 칠하고 닦아내는 것을 반복할 뿐 색채를 두껍게 쓰지도 않는다. 일본풍의 현란함보다 우리 전통의 맑고 고요한 깊이를 살려내기 위해서다.
붓질을 통해 관람객을 춤추게 만들겠다는 게 이씨의 포부다. 그는 “장자의 무위자연에서 받은 감동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