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그룹이 처분해야 할 삼성물산 주식을 1000만주로 잠정 결정했다. 하지만 두 달 뒤 500만주로 낮췄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를 삼성 로비와 청와대 외압에 따른 공정위의 ‘삼성 특혜’로 보고 있다.

공정위 의견은 다르다. 당시 공정위는 정재찬 위원장과 김학현 부위원장(현재 퇴직) 등 내부 관계자들과 외부 전문가 등 9명으로 구성된 ‘전원회의’를 거쳐 500만주 매각이 적절하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공정위의 의사결정에 관여한 복수의 관계자 얘기를 종합하면 “처분 주식 수 변경은 공정거래법 해석 과정의 다양한 의견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나온 적법한 절차에 의한 것이었으며 외압이나 로비에 따른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재소환한 특검] 공정위 핵심관계자가 털어놓은 '삼성 순환출자 논란' 전말
◆‘반론권 보장’ 차원의 만남

첫 번째 쟁점은 삼성이 신규 순환출자 해소와 관련, 공정위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공정위 관계자들을 접촉한 게 ‘부적절한 일’이었는지 여부다. 특검은 ‘로비’로 판단하고 있지만, 공정위 내부에선 피조사기업의 의견을 듣는 건 ‘통상적인 업무 협의 과정’이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공정위는 통상 사건 조사 중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피조사기업 법무대리인이나 관계자들의 방문을 막지 않는다. 조사 과정에서 상대방 ‘의견 청취’는 무리한 조사를 막기 위한 통상적인 절차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미국 퀄컴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조사 과정에서도 퀄컴 관계자들의 방문을 허가하고 면담을 통해 의견을 청취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절차적 문제’로 피조사기업으로부터 꼬투리가 잡히게 된다”며 “조사 담당 공무원이 상대방을 만나는 게 곧 ‘로비’로 연결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설명했다.

◆매각 주식 감소는 ‘합리적’ 결정

공정위가 삼성그룹의 매각 주식 수를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바꾼 것도 ‘합리적인 법 적용 과정’이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공정거래법을 보면 ‘기존 순환출자 고리 내에 있는 계열회사 간 합병에 따른 출자는 법 적용에서 제외된다’는 조항이 있다. 삼성전기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전 ‘옛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전기→제일모직→생명보험→화재보험→옛 삼성물산’으로 연결되는 순환출자 고리에 속해 제일모직 지분 3.7%를 갖고 있었다. 이 고리는 합병 뒤 ‘합병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전기→합병 삼성물산’으로 바뀌었다. 실무진은 삼성전기가 합병 후 갖게 된 삼성물산 지분 2.6%(500만주)가 ‘순환출자 강화’에 해당하기 때문에 팔아야 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공정위 전원회의 검토 결과 이 순환출자는 ‘예외 적용 대상’으로 판명됐다. ‘기존 순환출자 고리 내 계열회사 간 합병에 따라 생긴 것’이라고 결론났기 때문이다. 한 경쟁법 전문가는 “실무진의 잘못된 법 적용을 공정위가 최종적으로 바로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산 처분 지분 왜 줄이려 했나

특검은 삼성SDI 등이 처분해야 하는 삼성물산 주식을 1000만주에서 줄이기 위해 삼성이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와 연관돼 있다는 시각이다. 이게 핵심 혐의점 중 하나다.

삼성은 “삼성물산 처분 주식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 이유는 이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게 아니라 소액주주 피해를 줄이려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의 삼성물산 지분은 39%에 달한다. 2~4%를 팔아도 지배, 승계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식 1000만주를 일시에 시장에 내다 팔면 주가 폭락으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삼성SDI가 판 주식 일부를 이 부회장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2월25일 삼성SDI가 삼성물산 500만주(2.62%)를 팔 때 130만5000주를 이 부회장이 직접 사들였다. 나머지 369만5000주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이 196만주, 기관투자가들이 173만5000주를 각각 매입했다. 시장에선 이 부회장이 블록딜 직전 돈 2000억원을 넣어 0.7%를 추가 매입해 ‘물산 중심 삼성 지주회사’ 기대감을 높인 것도 블록딜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이 부회장이 주식 매입에 쓴 돈은 2015년 말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 실패 시 실권주 인수를 위해 삼성SDS 지분을 팔아 마련한 돈 3000억원 중 일부였다.

황정수/김현석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