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인형뽑기방, 상권 불황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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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뽑기방 바이러스급 증식… 90% 이상이 '6개월 내 신생아'
재미추구 나홀로족 겨냥, 치킨집·편의점보다 쉬운 소자본창업
재미추구 나홀로족 겨냥, 치킨집·편의점보다 쉬운 소자본창업
[ 김봉구/조아라 기자 ] # 지난 13일 오후 10시께 서울 지하철. 어림잡아 30대 중후반의 여성이 도라에몽 인형 하나를 옆구리에 낀 채 탔다. 선물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포장이나 쇼핑백이 없었다. 번화가 중심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인형뽑기의 ‘손맛’이라는 심증이 갔다.
# 15일 오전 6시경 인천의 한 수변상가. 물증이 보였다. 300m 거리의 상가 양쪽으로 가게 10여 곳이 불을 환히 밝혔다. 모두 인형뽑기방이다. 기계마다 포켓몬스터, 카카오 프렌즈, 코코몽 등의 캐릭터 인형들이 들어찼다. 얼마 전까지 포차, 곱창집, 철판구이 전문점이었던 곳들이다.
눈 깜짝할 새 바뀌었다. 몇몇 뽑기방은 간판도 달지 않았다. 현수막으로 대신했다. 내부 인테리어는 그대로 두고 기계만 들여놓은 곳도 있었다. 급한 업종 변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한 뽑기방 벽면에는 ‘OO곱창 대박 나세요’라는 연예인 사인지와 인형뽑기 이용 준수사항, 관리자 연락처 따위가 나란히 붙었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인형뽑기방 90% 이상이 오픈 6개월 안쪽의 신생 점포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21곳이었던 뽑기방은 지난해 8월 147곳, 올해 1월 1160곳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날 둘러본 뽑기방의 ‘청소년게임제공업자 등록증’ 교부 날짜는 가장 오래된 곳이 작년 10월이었고 한 달이 채 안 된 곳도 상당수였다. ◆ "손이 가요, 손이 가…자꾸만 손이 가~"
증식 속도가 바이러스급이다. 무엇 때문일까. 재미를 추구하는 나홀로족 트렌드와 갈 곳 잃은 소자본창업 수요가 절묘하게 만나 시너지를 낸 것이다.
열풍의 무게중심은 ‘인형’보다 ‘뽑기’ 쪽에 있다. 지난 10일 서울 신촌의 한 뽑기방에서 만난 김수용 씨(28)는 “인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뽑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고 귀띔했다. 1만 원 이상 들여 인형 하나를 뽑았다는 스무 살 학생도 “이러면 엄마한테 혼나는데… 그래도 계속하게 된다”며 웃었다.
한 뽑기방은 ‘나라를 구한 기쁨, 능력자 덕후 반열, 승부욕·인내심 함양’이 인형뽑기의 효능이라고 익살스럽게 소개했다. 뽑기 행위 자체에서 만족감을 얻는 점, 그 인형이 필요해서 뽑는 게 아니라는 점, 한 번에 단돈 1000원의 소액으로 즐길 수 있는 점 등이 인기 요인임을 엿볼 수 있다.
뽑은 인형이 모조품(짝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뽑기방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짝퉁인지 아닌지가 뭐 중요한가요”라고 되물었다. “어차피 정품일 거란 생각은 안 한다”고도 했다. 현행법 또한 게임 경품 가격 상한선을 5000원으로 제한하고 있어 기계 속 인형들은 중국산 등 원가가 낮은 짝퉁으로 채워졌다.
이처럼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뽑는 성취감과 중독성 높은 쾌감은 전형적인 ‘게임의 재미’다. 최근의 인형뽑기 인기를 “재미를 찾는 소비 패턴, 나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풀이한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1인가구 증가에 따른 ‘홀로놀이’ 추세와 키덜트(어린이 감성의 어른) 문화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 치킨집·편의점 대신, 만만한 게 '뽑기방'
단 수요 측면만 봐서는 인형뽑기방의 폭발적 증가세가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공급 측면, 즉 치킨집과 편의점이 대표 주자였던 비숙련 소자본창업이 뽑기방으로 몰렸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소자본창업은 크게 외식업과 소매업 두 가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구조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커진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의 말이다. 이른바 ‘풍선 효과’다.
박 교수는 “지금 외식업 대표 격인 치킨집 차리면 망한다고 하니 소자본창업 준비하는 사람들이 소매업 쪽에 눈을 돌린다. 그런데 편의점은 웬만한 상권에는 다 있고 거리제한 준수 문제가 있다. 결국 그 수요가 뽑기방으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번화가인 신촌 상권의 인형뽑기방은 원래 일본식 선술집, 족발집, 한식 음식점 등이었던 곳에 들어섰다. 임대료 부담이 만만찮지만 상쇄 요인이 있다. 일단 인건비와 시설비 부담이 적다. 또 실패해도 손실 금액이 그렇게 크지 않은 편이다.
뽑기방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무인운영을 하니까 인건비가 안 든다. 아르바이트를 써서 뽑기방 기계 고장 문의 받고, 인형이 부족해지면 채워 넣는 정도로만 관리하면 된다”면서 “수입이 전액 현금으로 들어오는 것도 요즘 같은 불경기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라고 전했다.
김봉구·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 15일 오전 6시경 인천의 한 수변상가. 물증이 보였다. 300m 거리의 상가 양쪽으로 가게 10여 곳이 불을 환히 밝혔다. 모두 인형뽑기방이다. 기계마다 포켓몬스터, 카카오 프렌즈, 코코몽 등의 캐릭터 인형들이 들어찼다. 얼마 전까지 포차, 곱창집, 철판구이 전문점이었던 곳들이다.
눈 깜짝할 새 바뀌었다. 몇몇 뽑기방은 간판도 달지 않았다. 현수막으로 대신했다. 내부 인테리어는 그대로 두고 기계만 들여놓은 곳도 있었다. 급한 업종 변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한 뽑기방 벽면에는 ‘OO곱창 대박 나세요’라는 연예인 사인지와 인형뽑기 이용 준수사항, 관리자 연락처 따위가 나란히 붙었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인형뽑기방 90% 이상이 오픈 6개월 안쪽의 신생 점포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21곳이었던 뽑기방은 지난해 8월 147곳, 올해 1월 1160곳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날 둘러본 뽑기방의 ‘청소년게임제공업자 등록증’ 교부 날짜는 가장 오래된 곳이 작년 10월이었고 한 달이 채 안 된 곳도 상당수였다. ◆ "손이 가요, 손이 가…자꾸만 손이 가~"
증식 속도가 바이러스급이다. 무엇 때문일까. 재미를 추구하는 나홀로족 트렌드와 갈 곳 잃은 소자본창업 수요가 절묘하게 만나 시너지를 낸 것이다.
열풍의 무게중심은 ‘인형’보다 ‘뽑기’ 쪽에 있다. 지난 10일 서울 신촌의 한 뽑기방에서 만난 김수용 씨(28)는 “인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뽑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고 귀띔했다. 1만 원 이상 들여 인형 하나를 뽑았다는 스무 살 학생도 “이러면 엄마한테 혼나는데… 그래도 계속하게 된다”며 웃었다.
한 뽑기방은 ‘나라를 구한 기쁨, 능력자 덕후 반열, 승부욕·인내심 함양’이 인형뽑기의 효능이라고 익살스럽게 소개했다. 뽑기 행위 자체에서 만족감을 얻는 점, 그 인형이 필요해서 뽑는 게 아니라는 점, 한 번에 단돈 1000원의 소액으로 즐길 수 있는 점 등이 인기 요인임을 엿볼 수 있다.
뽑은 인형이 모조품(짝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뽑기방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짝퉁인지 아닌지가 뭐 중요한가요”라고 되물었다. “어차피 정품일 거란 생각은 안 한다”고도 했다. 현행법 또한 게임 경품 가격 상한선을 5000원으로 제한하고 있어 기계 속 인형들은 중국산 등 원가가 낮은 짝퉁으로 채워졌다.
이처럼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뽑는 성취감과 중독성 높은 쾌감은 전형적인 ‘게임의 재미’다. 최근의 인형뽑기 인기를 “재미를 찾는 소비 패턴, 나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풀이한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1인가구 증가에 따른 ‘홀로놀이’ 추세와 키덜트(어린이 감성의 어른) 문화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 치킨집·편의점 대신, 만만한 게 '뽑기방'
단 수요 측면만 봐서는 인형뽑기방의 폭발적 증가세가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공급 측면, 즉 치킨집과 편의점이 대표 주자였던 비숙련 소자본창업이 뽑기방으로 몰렸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소자본창업은 크게 외식업과 소매업 두 가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구조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커진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의 말이다. 이른바 ‘풍선 효과’다.
박 교수는 “지금 외식업 대표 격인 치킨집 차리면 망한다고 하니 소자본창업 준비하는 사람들이 소매업 쪽에 눈을 돌린다. 그런데 편의점은 웬만한 상권에는 다 있고 거리제한 준수 문제가 있다. 결국 그 수요가 뽑기방으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번화가인 신촌 상권의 인형뽑기방은 원래 일본식 선술집, 족발집, 한식 음식점 등이었던 곳에 들어섰다. 임대료 부담이 만만찮지만 상쇄 요인이 있다. 일단 인건비와 시설비 부담이 적다. 또 실패해도 손실 금액이 그렇게 크지 않은 편이다.
뽑기방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무인운영을 하니까 인건비가 안 든다. 아르바이트를 써서 뽑기방 기계 고장 문의 받고, 인형이 부족해지면 채워 넣는 정도로만 관리하면 된다”면서 “수입이 전액 현금으로 들어오는 것도 요즘 같은 불경기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라고 전했다.
김봉구·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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