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해 11월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후 외국 국가원수로는 가장 먼저 미국으로 날아갔다.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전 비공식 만남이었던 만큼 세세한 대화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백악관 주인과 일찌감치 ‘아이스브레이킹(icebreaking)’에 나선 것이었다. 당시엔 금색 드라이버를 들고 갔다. 아베는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위해 지난주 3개월 만에 다시 미국을 방문했다. 그 사이 트럼프는 TPP 탈퇴를 발표하고 일본 자동차 업계에 쓴소리를 하는가 하면 일본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하는 등 반일(反日)적 언행을 쏟아냈다.

하지만 아베는 불쾌한 내색 하나 없이 트럼프를 다시 만나 정상회담을 했고 전용기도 함께 타고 골프도 쳤다. 미국에 7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조공 보따리’를 풀었고 대신 아·태 지역에서 안보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 센카쿠열도에서 무력충돌이 생기면 미국이 개입할 것이란 약속도 받았다. 대북 공조도 재확인했다.

이런 아베의 대미 외교방식을 둘러싸고 엇갈린 해석이 나오고 있다. ‘조공 외교’니 ‘굴종 외교’니 하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실리 외교’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아베는 힐러리의 당선이 유력시되던 지난해 9월에는 서둘러 힐러리를 만나기도 했다. 누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든, 주변국이 뭐라 하든, 일본의 국익을 위해 총리가 소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던 것이다. 아베는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심리학자들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일본이라고 국가 자존심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괜한 명분을 내세우기보다는 미국에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다는 유연한 사고와 태도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일본 국민의 70.2%가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아베 지지율은 61.7%까지 올라갔다. 한국의 대통령이 아베처럼 했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 굴욕 외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비난에 직면했을 수도 있다. 명분에 사로잡혀 외교의 기본도 놓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