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남은 모스크바와 스위스 등지에서 유학하며 북한 정보기술(IT) 발전에 큰 관심을 뒀다. 1990년 조선컴퓨터센터(KCC) 설립을 주도하는 등 IT분야 및 군사분야 주요 직책을 맡은 김정남이 낙마한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 나리타공항 밀입국 미수사건이었다. 김정남은 2001년 5월 아들 및 두 명의 여성을 대동하고 도미니카 가짜 여권을 소지한 채 나리타공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돼 추방됐다.

권력 승계 구도에서 밀려난 김정남과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사이의 갈등은 꾸준히 관측돼왔다. 김정남은 김정일 생전 매달 수백만달러의 활동비를 지원받으며 생활했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 사실상 지원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무기 거래 및 IT분야 사업으로 반전을 꾀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은 2009년 6월 김정남을 살해하기 위해 중국에 비밀요원을 파견했다가 중국 정부의 반대로 포기했다는 설도 돌았다.
김정남, 김정은 형제의 고모부인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2013년 처형된 이후 김정남의 한국 망명이 추진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장성택은 생전 김정은보다 김정남이 후계로 적합하다고 김정일에게 조언했고 장성택은 중국과 긴밀한 관계였기 때문에 중국도 김정남의 신변을 보호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후 김정남이 남한과 북한 사이에 비선 역할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김정은이 이를 빌미로 김정남을 제거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지금은 권력 중심에서 밀려나 있지만 북한 내부를 향해 쓴소리를 내는 김정남이 언젠가 중국을 등에 업고 김정은의 지위를 위협할 것으로 북한 실세들이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박상익/장진모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