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느리지만 최선의 결정?…그땐 이미 경쟁력 증발
“느리면서 좋은 의사결정은 없다. 빠르면서 좋은 의사결정만 있을 뿐이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경영에서 속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빠르다고 반드시 품질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느리면 아예 제품 자체의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시간이라는 가장 소중한 자원을 낭비해가며 남보다 늦게 의사결정을 했다면, 아무리 올바른 결론이라도 이미 경쟁력을 잃은 결정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속도는 가장 중요한 강점 중 하나다. 한국 기업들도 속도를 경쟁력으로 삼아 글로벌 시장의 ‘빠른 추격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선도자’ 자리에 오르기는커녕 중국에 의해 빠른 추격자의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다. 오랫동안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몸담았던 강우란 AJ가족경영연구소장 겸 AJ렌터카 전략총괄은 《굿 스피드의 조건》에서 빠른 기업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기업들에 필요한 스피드가 무엇인지 분석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강점이었던 스피드와 지금 필요한 스피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각 기능의 프로세스가 신속하면 빠른 기업이었다. 이는 1세대 ‘오퍼레이션 스피드’로서, 그 시대 최강자는 도요타였다. 낭비와 비효율을 찾아내 미국 자동차 회사가 5년 걸린 신차 생산 사이클을 3년으로 단축했다.

2세대 스피드는 빠른 의사결정으로 대변되는 ‘전략 스피드’다. 1990년대 이후에는 최고경영자 리더십을 기반으로 글로벌 진출, 대규모 인수합병, 인터넷 비즈니스 등 단호한 결정이 중요했다. 삼성 반도체와 현대중공업은 2세대 스피드의 대표주자다.

2000년대 이후 경영 환경은 더욱 변화무쌍해졌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너무 커져서 작은 시도 없이는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어졌다. 저자는 3세대 ‘실험 스피드’가 필요한 시기가 왔다고 설명한다. 시도해보지 않는 한 도저히 알 수 없는 리스크를 찾아내 해결책을 발견하고 경로를 개척해내는 방식의 실험이다. 구글과 아마존은 시도와 실패를 밥 먹듯이 하면서 길을 찾는다. 인터넷시대 스피드의 강자 구글, 애플, 아마존의 임직원을 인터뷰하며 왜 빠른지 이유를 찾는다. 또한 스피드의 도전을 받는 IBM, GE, 마이크로소프트, 인텔의 임직원을 통해 이들의 대처 방법을 분석한다.

저자는 “한국 기업이 3세대 스피드 강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목표·권한·신뢰의 세 가지 드라이버를 작동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단히 목표지향적이고, 구성원의 자발성이 높으며, 조직 작동이 투명하다면 선도자로서 스피드를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