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우린 진상고객 거부할 권리 없나요" 속병 드는 택시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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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차거부 논란에 대한 '항변'
불친절 과태료 10만원
고객 욕설·폭언은 처벌 못해…시달리다보면 골라태우고 싶어
만취 손님은 '공포 대상'
기사에 시비 걸거나 구토까지…냄새나면 하루 영업 끝내야
승차거부 모두 불법 아니다
인사불성 취객은 거부할 수 있어…승객도 '단속 매뉴얼' 알았으면
불친절 과태료 10만원
고객 욕설·폭언은 처벌 못해…시달리다보면 골라태우고 싶어
만취 손님은 '공포 대상'
기사에 시비 걸거나 구토까지…냄새나면 하루 영업 끝내야
승차거부 모두 불법 아니다
인사불성 취객은 거부할 수 있어…승객도 '단속 매뉴얼' 알았으면
“야, 운전 똑바로 못해?”
서울에서 12년째 개인택시를 모는 김모씨(61)는 얼마 전 승객의 느닷없는 반말을 들었다. 백미러로 뒷좌석을 보니 아들 또래였다. 꾹 참았다. ‘취해서 그러려니,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수록 가관이었다. 취객은 “택시 미터기를 조작한 거 아니냐”며 시비를 걸었다. 그는 “손님, 계속 욕을 할 거면 내리시죠”라고 점잖게 말했다. 그러자 “지금 승차 거부하는 거냐. 신고하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목적지에 도착하고나선 요금을 내지 않겠다고 버텼다. 결국엔 “××, 주면 될 거 아니야”라며 신용카드를 던졌다. 김씨는 차량 바닥에서 카드를 주워 요금을 결제해야 했다. 그는 “참고 또 참는데 가끔은 울화병이 생길까 걱정될 때도 있다”며 “‘진상 취객’은 택시기사들도 승차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택시기사만큼 참을성이 필요한 직업도 많지 않다. 한 택시기사는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꿈꾸면서 택시를 몰게 됐는데 가끔은 한(恨)이 맺힌다”고 말했다.
생계 위협하는 ‘진상 취객’
모두가 시민 처지에서만 말한다. 기사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다. 서울시 정책도 그렇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부터 불친절 신고를 받은 택시기사에게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하고 있다. 승객에게 반말이나 욕설, 폭언을 하거나 성차별·성희롱 발언으로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처벌한다.
하지만 승객이 운전 중 택시기사에게 폭언을 하더라도 처벌할 방법은 없다. 운전자 폭행은 가중처벌 규정이 있지만 욕설은 제재 수단이 없다. 불특정 또는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공연성이 전제되지 않아 형법상 모욕죄 성립이 어렵다.
‘진상 취객’은 택시기사의 생계를 위협한다. 기사들이 시비에 휘말리고 욕설을 듣는 것보다 참기 어려운 것은 돈벌이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취객이 택시 안에 구토라도 하면 ‘그날 하루 영업은 끝장’이다. 세차를 해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 하루 영업을 일찍 마쳐야 한다.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서울시는 2015년 2월 택시운송사업약관을 개정해 구토 등으로 차량을 오염시키면 최대 15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하지만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 법인택시를 운전하는 한모씨(54)는 “택시 안에 토해놓고 돈을 물어주지 않겠다는 승객과 시비가 붙어 파출소까지 간 적이 있지만 경찰도 딱히 방법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만취한 승객이 인사불성이 되면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파출소나 지구대로 손님을 데려가야 한다. 손님을 흔들어 깨우거나 부축하는 일은 금물이다. 자칫 도난, 성추행 시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개인택시 기사 김모씨(70)는 “술에 취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승객을 집 앞까지 부축해줬다가 다음날 ‘지갑을 훔쳐 갔느냐’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법인택시 기사들은 더 절박하다. 이들은 회사에서 택시를 지원받는 대신 한 달 중 26일치 사납금(하루 14만원 안팎)을 내야 한다. 하루 영업을 못하면 사납금을 개인 돈으로 메워야 한다. 법인택시 기사 정모씨(51)는 “하루 12시간쯤 일해야 사납금을 버는데 26일치를 회사에 가져다주면 월급 150만원쯤 받는다”며 “진상을 만나 영업에 지장이 생기면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승차거부 무차별 신고에 몸살
택시기사들의 가장 큰 불만은 진상 손님을 가려 받을 권리가 없다는 데 있다. 시민 관점에선 ‘승차 거부’가 되기 때문이다. 당국의 승차 거부 단속은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서울시는 10년 전부터 120 다산콜센터를 통해 택시 승차 거부 신고를 받고 있다. 단속반을 운영해 강남역, 종로, 홍대입구 등에서 승차 거부 현장 단속도 한다. 국토교통부는 재작년 승차 거부 택시 ‘삼진아웃제’까지 도입했다. 승차 거부로 처음 적발되면 과태료 20만원, 두 번째 적발 때는 영업정지 30일에 과태료 40만원을 부과한다. 세 번째 적발되면 과태료 60만원을 부과하는 건 물론이고 택시운전 자격을 취소한다.
영업 방해에 대한 정당한 승차 거부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다. 택시기사 최모씨(64)는 “일부 기사들이 돈 좀 더 벌겠다고 몰상식하게 승차 거부를 일삼는 것은 문제지만 정당한 승차 거부는 존중받아야 한다”며 “손님들이 승차 거부 신고를 남발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 8월까지 승차 거부로 신고된 서울 택시는 6만9000여건에 달하지만 실제 과태료가 부과된 택시는 7750건(약 11%)에 불과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와 막상 조사해 보면 승차 거부가 아닌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모씨(71)는 “택시 승차 거부 신고를 받으면 시청이나 구청에 진술서를 내고 ‘태코미터’라 불리는 택시 미터기 기록도 제출해야 한다”며 “시청이나 구청에 직접 출석하도록 요구하기도 해 하루를 고스란히 날린다”고 토로했다.
“나쁜 사람 취급 마세요”
동료가 “기사님, ×××로 좀 부탁드려요”라고 하면서 인사불성 직전인 취객을 태우면 기사는 승차를 거부할 수 있다. 국토부 택시 승차 거부 단속 매뉴얼에 따르면 ‘행선지를 말하지 못할 정도의 만취 상태 승객을 거부하는 행위’는 승차 거부가 아니다.
법인택시 기사는 교대시간에 승차를 거부할 수 있다. 영업시간에 제한이 없는 개인택시와 달리 법인택시는 하루 2교대로 근무한다. 주간근무는 보통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야간근무는 오후 4시부터 새벽 4시까지 운행한다.
승차 거부 단속 매뉴얼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택시 7년 경력의 이모씨(55)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택시 승차 거부를 뿌리 뽑겠다’고 하는 건 봤어도 ‘이런 건 정상적인 택시 영업이고 승차 거부가 아닙니다’라고 홍보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며 “애꿎은 기사들만 ‘나쁜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서울에서 12년째 개인택시를 모는 김모씨(61)는 얼마 전 승객의 느닷없는 반말을 들었다. 백미러로 뒷좌석을 보니 아들 또래였다. 꾹 참았다. ‘취해서 그러려니,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수록 가관이었다. 취객은 “택시 미터기를 조작한 거 아니냐”며 시비를 걸었다. 그는 “손님, 계속 욕을 할 거면 내리시죠”라고 점잖게 말했다. 그러자 “지금 승차 거부하는 거냐. 신고하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목적지에 도착하고나선 요금을 내지 않겠다고 버텼다. 결국엔 “××, 주면 될 거 아니야”라며 신용카드를 던졌다. 김씨는 차량 바닥에서 카드를 주워 요금을 결제해야 했다. 그는 “참고 또 참는데 가끔은 울화병이 생길까 걱정될 때도 있다”며 “‘진상 취객’은 택시기사들도 승차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택시기사만큼 참을성이 필요한 직업도 많지 않다. 한 택시기사는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꿈꾸면서 택시를 몰게 됐는데 가끔은 한(恨)이 맺힌다”고 말했다.
생계 위협하는 ‘진상 취객’
모두가 시민 처지에서만 말한다. 기사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다. 서울시 정책도 그렇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부터 불친절 신고를 받은 택시기사에게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하고 있다. 승객에게 반말이나 욕설, 폭언을 하거나 성차별·성희롱 발언으로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처벌한다.
하지만 승객이 운전 중 택시기사에게 폭언을 하더라도 처벌할 방법은 없다. 운전자 폭행은 가중처벌 규정이 있지만 욕설은 제재 수단이 없다. 불특정 또는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공연성이 전제되지 않아 형법상 모욕죄 성립이 어렵다.
‘진상 취객’은 택시기사의 생계를 위협한다. 기사들이 시비에 휘말리고 욕설을 듣는 것보다 참기 어려운 것은 돈벌이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취객이 택시 안에 구토라도 하면 ‘그날 하루 영업은 끝장’이다. 세차를 해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 하루 영업을 일찍 마쳐야 한다.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서울시는 2015년 2월 택시운송사업약관을 개정해 구토 등으로 차량을 오염시키면 최대 15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하지만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 법인택시를 운전하는 한모씨(54)는 “택시 안에 토해놓고 돈을 물어주지 않겠다는 승객과 시비가 붙어 파출소까지 간 적이 있지만 경찰도 딱히 방법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만취한 승객이 인사불성이 되면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파출소나 지구대로 손님을 데려가야 한다. 손님을 흔들어 깨우거나 부축하는 일은 금물이다. 자칫 도난, 성추행 시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개인택시 기사 김모씨(70)는 “술에 취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승객을 집 앞까지 부축해줬다가 다음날 ‘지갑을 훔쳐 갔느냐’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법인택시 기사들은 더 절박하다. 이들은 회사에서 택시를 지원받는 대신 한 달 중 26일치 사납금(하루 14만원 안팎)을 내야 한다. 하루 영업을 못하면 사납금을 개인 돈으로 메워야 한다. 법인택시 기사 정모씨(51)는 “하루 12시간쯤 일해야 사납금을 버는데 26일치를 회사에 가져다주면 월급 150만원쯤 받는다”며 “진상을 만나 영업에 지장이 생기면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승차거부 무차별 신고에 몸살
택시기사들의 가장 큰 불만은 진상 손님을 가려 받을 권리가 없다는 데 있다. 시민 관점에선 ‘승차 거부’가 되기 때문이다. 당국의 승차 거부 단속은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서울시는 10년 전부터 120 다산콜센터를 통해 택시 승차 거부 신고를 받고 있다. 단속반을 운영해 강남역, 종로, 홍대입구 등에서 승차 거부 현장 단속도 한다. 국토교통부는 재작년 승차 거부 택시 ‘삼진아웃제’까지 도입했다. 승차 거부로 처음 적발되면 과태료 20만원, 두 번째 적발 때는 영업정지 30일에 과태료 40만원을 부과한다. 세 번째 적발되면 과태료 60만원을 부과하는 건 물론이고 택시운전 자격을 취소한다.
영업 방해에 대한 정당한 승차 거부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다. 택시기사 최모씨(64)는 “일부 기사들이 돈 좀 더 벌겠다고 몰상식하게 승차 거부를 일삼는 것은 문제지만 정당한 승차 거부는 존중받아야 한다”며 “손님들이 승차 거부 신고를 남발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 8월까지 승차 거부로 신고된 서울 택시는 6만9000여건에 달하지만 실제 과태료가 부과된 택시는 7750건(약 11%)에 불과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와 막상 조사해 보면 승차 거부가 아닌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모씨(71)는 “택시 승차 거부 신고를 받으면 시청이나 구청에 진술서를 내고 ‘태코미터’라 불리는 택시 미터기 기록도 제출해야 한다”며 “시청이나 구청에 직접 출석하도록 요구하기도 해 하루를 고스란히 날린다”고 토로했다.
“나쁜 사람 취급 마세요”
동료가 “기사님, ×××로 좀 부탁드려요”라고 하면서 인사불성 직전인 취객을 태우면 기사는 승차를 거부할 수 있다. 국토부 택시 승차 거부 단속 매뉴얼에 따르면 ‘행선지를 말하지 못할 정도의 만취 상태 승객을 거부하는 행위’는 승차 거부가 아니다.
법인택시 기사는 교대시간에 승차를 거부할 수 있다. 영업시간에 제한이 없는 개인택시와 달리 법인택시는 하루 2교대로 근무한다. 주간근무는 보통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야간근무는 오후 4시부터 새벽 4시까지 운행한다.
승차 거부 단속 매뉴얼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택시 7년 경력의 이모씨(55)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택시 승차 거부를 뿌리 뽑겠다’고 하는 건 봤어도 ‘이런 건 정상적인 택시 영업이고 승차 거부가 아닙니다’라고 홍보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며 “애꿎은 기사들만 ‘나쁜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