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보툴리눔 치료》 영문판 출간
세계 의사들이 보는 영문판 교과서 한국 피부과 의사로는 첫 단독 저자
의과학 서적 세계 1위 출판사가 출간
보툴리눔톡신과의 우연한 인연
교감신경 절단해 다한증 치료하던 때 해외 학회지서 정보 얻어 주사 치료
'한국인 맞춤형' 주름치료도 연구
삶의 좌우명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어제 맞다고 생각했던 치료법도 오늘 달라질 수 있다고 믿어 왔죠
아름다움 찾은 환자 보면 보람 느껴
행사장은 서울대 의대 동문, 피부과 의사 등 서 원장 지인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등은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개량한복을 입고 이 자리에 참석한 서 원장은 테이블을 돌며 감사 인사를 했다. 며칠 뒤 인터뷰를 위해 서울 청담동 모델로피부과의원에서 만난 서 원장은 “어제 맞다고 생각하던 치료법이 오늘 달라질 수 있다”며 “늘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구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고 겸손하게 웃었다.
◆보툴리눔톡신 권위자를 만든 ‘우연’
흔히 보톡스로 불리는 보툴리눔톡신 시술은 신경독소를 근육에 주사해 외모 등을 바꾸는 시술이다. 칼을 대지 않고 외모를 개선하는 시술이 주목받으면서 보툴리눔톡신 시술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서 원장은 국내 보툴리눔톡신 시술 최고 권위자다. 보툴리눔톡신을 활용해 사각 턱을 둥글게 하는 시술, 종아리를 축소하는 시술 등을 개발해 보급했다. 그는 의료한류 전도사로도 불린다. 한국 미용 시술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그를 찾는 해외 학회가 늘고 있다. 서 원장은 “해외에서 참석 요청이 오면 가급적 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학회에 나가 시술법을 알리는 것이 의료한류를 전파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쉴 틈도 없이 바쁘다.
그가 보툴리눔톡신을 처음 안 것은 1998년 서울대병원 피부과 임상강사(펠로)로 근무하던 때다. 연구 주제를 찾기 위해 해외 피부과학회지를 살펴보던 그의 눈에 ‘손에 땀이 많이 나는 국소다한증 환자에게 보툴리눔톡신을 주사하면 증상을 5~6개월 정도 멈출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들어왔다. 국내 다한증 환자는 치료를 위해 흉부외과 의사에게 교감신경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던 때다. 하지만 한번 끊은 신경은 다시 회복하기 어렵고 수술을 받은 뒤 신경이 살아있는 다른 부위에 땀이 더 많이 나는 부작용까지 생길 가능성이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부작용을 우려한 일부 흉부외과 의사들이 수술을 꺼리는 일도 생겼다. 그는 “레지던트 시절 다한증 연구를 돕느라 고생한 경험 때문인지 치료가 어려운 다한증을 주사 한 방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보자 눈이 번쩍 떠졌다”고 했다.
연구계획을 세우기 위해 서울대병원 약전(약품의 기준·규격을 담아놓은 사전)을 찾아봤다. 당시 보툴리눔톡신 제제는 한 병에 6만원 정도로 비싸지 않았다. 다한증 환자가 6만원짜리 주사 치료를 받고 5~6개월 증상 없이 지낼 수 있으면 값어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계획서를 쓰고 약을 구하려 수소문하다가 약값이 60만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병원 약전 가격이 오타였던 것. “처음에는 연구를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조금 비싸더라도 한 번 시도는 해보자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서 원장은 보툴리눔톡신으로 다한증을 치료한 국내 첫 의사가 됐다. “제 연구가 알려지자 ‘주사 한 방으로 다한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어요. 정작 연구를 하다 보니 보툴리눔톡신 시술은 다한증 치료보다는 주름 치료에 많이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 후부터는 주름 치료에 매진했습니다.”
◆서울대병원을 나와 새 인생 시작
보툴리눔톡신의 가능성을 본 서 원장은 2001년 서울대병원을 나와 개원했다. 본격적으로 주름 치료에 뛰어든 그는 보툴리눔톡신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한국인과 서양인의 차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서 원장은 “서양인은 동양인보다 말할 때 얼굴 근육을 더 많이 사용한다”며 “비디오로 촬영했더니 30%나 더 사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는 “근육이 덜 발달된 동양인에게 서양인과 비슷한 용량의 보툴리눔톡신을 쓰면 근육이 굳거나 눈이 처지는 등의 부작용이 생겼다”며 “용량을 줄여가며 한국인에게 적합한 용법과 용량을 찾았고 이를 보급하기 위해 강의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가 개발한 한국인 맞춤형 보툴리눔톡신 용량은 새로운 시술 가이드라인이 됐다.
쓰지 않는 근육은 줄어든다는 원리를 이용해 사각 턱을 보툴리눔톡신으로 줄이는 방법도 개발했다. 처음 시술법을 개발했을 때는 친한 성형외과 의사들조차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외면했다. 지금은 보툴리눔톡신으로 사각 턱을 개선하는 것이 보편적인 시술이 됐다. 그가 개발한 시술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2년 월스트리트저널에 “한국인이 종아리를 축소하기 위해 신경을 끊는 수술을 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를 본 서 원장은 보툴리눔톡신 시술로 종아리를 축소하는 치료법을 개발했다. 체형 교정에 보툴리눔톡신을 도입한 첫 시도였다. 서 원장은 “처음에는 효과를 믿지 못하던 의사들도 임상 연구 결과를 보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며 “개발한 치료법 등은 모두 표준치료법이 돼 아시아 지역 등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고 설명했다.
◆삶의 축이 된 ‘일신우일신’
보툴리눔톡신 시술의 새 장을 열며 승승장구하던 서 원장이지만 개원의로 새 삶을 시작할 때는 고민이 많았다. 질환 치료를 하지 않는 병원을 운영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을 찾은 환자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그에게 ‘연구하는 의사’로 살라고 조언해 준 멘토도 있었다. 그는 “병원 개원을 도와준 경영컨설팅업체 대표가 ‘의료는 지식산업’이라는 말을 강조했다”며 “개업과 동시에 논문 쓰는 일이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개원의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해외 학회를 다녔다. 강연 일정을 잡고 강의 준비를 했다. 자연히 논문도 늘었다. 서 원장은 “후배들에게 책을 선물할 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이 갈수록 새로워짐)’이라는 말을 써준다”며 “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달인이 되는 것처럼 매일 시술을 하면서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높이는 것을 고민하다 보니 발전한 것 같다”고 했다.
서 원장의 부친은 2008년 작고한 서재관 전 고신대 의대 외과학 주임교수다. 대구 출생으로 경남고를 나와 서울대 의대에 들어간 서 원장은 외과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내과와 외과 치료가 모두 가능한 피부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보툴리눔톡신 최고 권위자가 됐다.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하지만 그는 늘 환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의사가 되려고 노력한다. 직원들과 함께 TV 광고를 패러디한 우스꽝스러운 홍보영상을 제작한 것도 이런 노력의 하나다.
“원래 다혈질적이고 신경질을 잘 내는 성격이었어요. 하지만 어느날 이런 성격이 다른 사람은 물론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가급적 칭찬을 많이 하고 유머러스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사람을 예쁘게 하고 젊게 해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 피부과 의사에겐 보람이기도 합니다.”
피부과 의사의 세계
의료계 대표 인기학과…피부외과 등 세부 전공
요즘 의료계에서 잘나가는 인기 과는 ‘피안성’과 ‘정재영’이다. 피안성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를 지칭하는 말이다. 정재영은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를 일컫는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의사 면허를 딴 의사는 대학병원 등 수련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거치며 전공을 선택한다. 이후 각 수련병원의 진료과별 레지던트 정원에 맞춰 지원해 전공의 과정에 들어간다. 진료과별 레지던트 수는 수련병원에서 미리 정해 제한한다. 이 때문에 전공을 원하는 의사는 많고 정원은 적은 미스매치 현상이 생긴다. 이 중 피부과는 매년 정원보다 전공을 원하는 의사가 많은 진료과다.
1958년 국내 전문의 자격증이 처음 생겼을 때는 피부비뇨기과로 시작했다. 일부 비뇨기과에서 여전히 피부과 진료를 하는 배경이다. 1964년 두 진료과가 분리되면서 피부과가 생겼다. 당시만 해도 피부과의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치료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은 데다 감염성 질환을 다룬다는 인식이 많았던 탓이다. 하지만 미용시술 등이 크게 인기를 끌고 수익이 보장되면서 피부과 지원자가 급격히 늘었다.
흔히 피부과라고 하면 피부 레이저나 보툴리눔톡신, 필러 등의 시술을 하는 미용 진료과로 여기기 쉽다. 피부과 전문의 자격증을 딴 뒤 다양한 세부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피부 조직의 변화 등을 관찰하는 피부병리, 각종 감염성 질환을 주로 치료하는 피부감염, 암 등을 수술하는 피부외과 등이 대표적이다. 2015년 기준 국내 활동 의사 9만5076명 중 피부과 의사는 1926명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