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둘·둘·둘' 다방커피서 스타벅스로…4000원 한 잔에 '나만의 공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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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공화국' 대한민국
왜 커피에 열광하나
성인 1년간 평균 348잔 마셔
도심·대학가선 도서관·사무실…동네에선 주부들 사랑방으로
1인가구 늘며 "같이 있고 싶다"…집에서 나와 커피 마시며 안도
테이크 아웃·스페셜티커피 등 트렌드 진화하며 시장 확장
왜 커피에 열광하나
성인 1년간 평균 348잔 마셔
도심·대학가선 도서관·사무실…동네에선 주부들 사랑방으로
1인가구 늘며 "같이 있고 싶다"…집에서 나와 커피 마시며 안도
테이크 아웃·스페셜티커피 등 트렌드 진화하며 시장 확장
서울 시내 웬만한 큰길에 서서 주위를 돌아보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가장 많이 보인다. 커피전문점만 최소 서너 개, 편의점까지 합치면 족히 7~8곳은 된다. 스타벅스 매장 수는 한국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그래도 점심시간마다 회사원들은 줄을 선다. 성인 한 명이 1년간 마시는 커피는 약 348잔. 1년 내내 커피를 달고 산다는 얘기다.
커피가 대중화된 지 30년 만의 일이다. 커피도 진화했다. 커피믹스와 자판기커피에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를 거쳐 에티오피아 케냐AA 등 원두를 골라 마시는 스페셜티 커피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 ‘커피공화국’임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연령 구분 없이 마신다는 것이다. 10대부터 70대까지. 한국인은 왜 이렇게 커피에 열광할까. 힌트는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마시거나 만남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데 있다. 도서관이자 사무실, 스터디 공간이자 사랑방, 그리고 누군가에겐 나만의 도피처가 되고 있다.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한국의 커피
일본은 한국보다 빠른 1700년대에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중국도 실크로드를 통해 훨씬 이전부터 ‘가배’라는 이름으로 커피가 유통됐다. 한국은 100년 전 고종이 처음 마셨다. 역사는 짧지만 유행 속도는 훨씬 빠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카페 문화를 ‘제3의 사회적 공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시내와 대학가 카페에는 일하는 공간으로 쓰는 ‘코피스(coffee+office)족’과 도서관처럼 활용하는 ‘카페브러리(cafe+library)족’으로 가득 찬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오히려 업무 효율을 높여준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스타벅스 종각역점에서 만난 대학원생 정예은 씨(25)는 “커피값 4000원으로 시간제한 없이 인터넷도 쓰고 공부도 할 수 있는 데가 또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중·고생들도 같은 이유로 카페를 찾는다. 스타벅스 멤버십 회원 중 10대는 16만명이 넘는다.
주부들은 사랑방으로 쓴다. 서울 목동과 대치동 등 학원가 커피전문점은 학부모 모임의 장소가 된 지 오래다.
‘나홀로족’도 커피 수요를 늘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여러 사람과 같이 공유하고 싶은 이중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며 “일하거나 공부할 때 주변에 다른 존재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면 자극을 받아 효율이 높아지는 ‘사회촉진 효과’가 우리나라 카페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이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만든 측면도 있다. 한 집 건너 하나씩 카페가 들어서면서 노년층과 남성들까지 소비층이 확대됐다. 요즘 대형 커피전문점에는 삼삼오오 모인 70대 이상 남성 고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커피업계 제3의 물결
커피가 대중화된 1980년대 이전에도 커피는 문화예술과 관련이 있었다. ‘다방 문화’다. 한국 사람이 개업한 최초의 다방은 1927년 서울 관훈동에 있던 ‘카카듀’. 주인이자 영화감독이던 이경손이 턱시도를 입고 커피를 날랐다. 1950년까지 서울 소공동의 ‘낙랑파라’, 종로의 ‘비너스’와 ‘멕시코’, 광교의 ‘올림피아’, 명동의 ‘에리사’ 등이 이름난 곳이다.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다방을 운영했다. 고전음악과 미술, 시와 문학, 정치를 두루 논했다.
1960~1970년대 다방은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다. 서울에 문화공간이 많이 없던 시절 출판기념회, 시낭독회, 단막극 등이 다방에서 열렸다. 대학생들은 계란 노른자를 띄운 진한 블랙커피를 마시며 팝송을 듣고 시를 읊었다. 통기타 가수들의 데뷔 무대가 되기도 했다. 개발연대인 이 시기에는 비즈니스맨과 한량들의 공간이기도 했다.
1980년대는 커피가 대중의 기호품이 됐다. 이전까지 공식이었던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은 커피믹스와 자판기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 도토루 자뎅 등 커피전문점이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 커피시장의 1단계로 부를 수 있는 다방의 전성기가 저물기 시작했다. 다방은 1996년 전국에 4만1008개로 정점을 찍었다. 2기는 1999년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 매장을 내며 시작됐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가 다방커피를 대체했다. 일회용 컵에 담아 길에서 들고 다니는 ‘테이크 아웃’ 문화가 생겼고, 무료 인터넷 서비스는 스타벅스를 대형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이후 2001년 커피빈 이디야커피 탐앤탐스가, 이듬해 투썸플레이스 파스쿠찌가 등장했다. 스타벅스 매장은 전국에 1000개가 넘는다. 스타벅스 점포의 매출과 매장 수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5위다.
스타벅스의 전성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넘보는 흐름이 등장했다. 원두 종류를 골라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커피업계에서는 ‘제3의 물결’이라고 부른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커피가 대중화된 지 30년 만의 일이다. 커피도 진화했다. 커피믹스와 자판기커피에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를 거쳐 에티오피아 케냐AA 등 원두를 골라 마시는 스페셜티 커피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 ‘커피공화국’임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연령 구분 없이 마신다는 것이다. 10대부터 70대까지. 한국인은 왜 이렇게 커피에 열광할까. 힌트는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마시거나 만남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데 있다. 도서관이자 사무실, 스터디 공간이자 사랑방, 그리고 누군가에겐 나만의 도피처가 되고 있다.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한국의 커피
일본은 한국보다 빠른 1700년대에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중국도 실크로드를 통해 훨씬 이전부터 ‘가배’라는 이름으로 커피가 유통됐다. 한국은 100년 전 고종이 처음 마셨다. 역사는 짧지만 유행 속도는 훨씬 빠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카페 문화를 ‘제3의 사회적 공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시내와 대학가 카페에는 일하는 공간으로 쓰는 ‘코피스(coffee+office)족’과 도서관처럼 활용하는 ‘카페브러리(cafe+library)족’으로 가득 찬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오히려 업무 효율을 높여준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스타벅스 종각역점에서 만난 대학원생 정예은 씨(25)는 “커피값 4000원으로 시간제한 없이 인터넷도 쓰고 공부도 할 수 있는 데가 또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중·고생들도 같은 이유로 카페를 찾는다. 스타벅스 멤버십 회원 중 10대는 16만명이 넘는다.
주부들은 사랑방으로 쓴다. 서울 목동과 대치동 등 학원가 커피전문점은 학부모 모임의 장소가 된 지 오래다.
‘나홀로족’도 커피 수요를 늘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여러 사람과 같이 공유하고 싶은 이중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며 “일하거나 공부할 때 주변에 다른 존재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면 자극을 받아 효율이 높아지는 ‘사회촉진 효과’가 우리나라 카페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이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만든 측면도 있다. 한 집 건너 하나씩 카페가 들어서면서 노년층과 남성들까지 소비층이 확대됐다. 요즘 대형 커피전문점에는 삼삼오오 모인 70대 이상 남성 고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커피업계 제3의 물결
커피가 대중화된 1980년대 이전에도 커피는 문화예술과 관련이 있었다. ‘다방 문화’다. 한국 사람이 개업한 최초의 다방은 1927년 서울 관훈동에 있던 ‘카카듀’. 주인이자 영화감독이던 이경손이 턱시도를 입고 커피를 날랐다. 1950년까지 서울 소공동의 ‘낙랑파라’, 종로의 ‘비너스’와 ‘멕시코’, 광교의 ‘올림피아’, 명동의 ‘에리사’ 등이 이름난 곳이다.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다방을 운영했다. 고전음악과 미술, 시와 문학, 정치를 두루 논했다.
1960~1970년대 다방은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다. 서울에 문화공간이 많이 없던 시절 출판기념회, 시낭독회, 단막극 등이 다방에서 열렸다. 대학생들은 계란 노른자를 띄운 진한 블랙커피를 마시며 팝송을 듣고 시를 읊었다. 통기타 가수들의 데뷔 무대가 되기도 했다. 개발연대인 이 시기에는 비즈니스맨과 한량들의 공간이기도 했다.
1980년대는 커피가 대중의 기호품이 됐다. 이전까지 공식이었던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은 커피믹스와 자판기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 도토루 자뎅 등 커피전문점이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 커피시장의 1단계로 부를 수 있는 다방의 전성기가 저물기 시작했다. 다방은 1996년 전국에 4만1008개로 정점을 찍었다. 2기는 1999년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 매장을 내며 시작됐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가 다방커피를 대체했다. 일회용 컵에 담아 길에서 들고 다니는 ‘테이크 아웃’ 문화가 생겼고, 무료 인터넷 서비스는 스타벅스를 대형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이후 2001년 커피빈 이디야커피 탐앤탐스가, 이듬해 투썸플레이스 파스쿠찌가 등장했다. 스타벅스 매장은 전국에 1000개가 넘는다. 스타벅스 점포의 매출과 매장 수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5위다.
스타벅스의 전성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넘보는 흐름이 등장했다. 원두 종류를 골라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커피업계에서는 ‘제3의 물결’이라고 부른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