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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 칼럼] 루터 개혁 5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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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천자 칼럼] 루터 개혁 500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루터파 목사의 딸이다. 지금도 루터파 교회를 다닌다. 메르켈을 상징하는 검박과 차분함, 정직성 등은 루터파 정신에서 비롯했다. 독일 대통령인 요하임 가우크는 루터파 목사다. 유로존의 내핍을 강조하는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 또한 독실한 루터파 신자다. 나치주의나 공산주의가 독일을 휩쓸었을 때도 루터주의는 불가침이었다. 영국 BBC는 “독일은 아직 루터적 세계관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정작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할 만큼 활달하고 농담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과묵한 독일인의 특성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원래 그의 꿈은 훌륭한 법률가였다. 하지만 22세 때 슈토테르하임의 숲에서 벼락을 만났다. 가장 친한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광경을 보고 루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땅바닥에 엎드려 광부들의 수호성인인 성 안나를 불렀다. 그는 훗날 수도사가 된 배경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한 것도 아니고, 원해서도 아니었다.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고뇌에 휩싸여 어쩔 수 없이 서약하게 됐다”고 말했다.

    루터는 신부가 된 이후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목도한다. 특히 교회가 면죄부를 판매하고 그 자금이 교회와 성직자의 축재에 쓰이는 걸 보고 참지 못하게 된다. 그가 1517년 10월31일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성 교회의 문에 내걸면서 공개 논쟁을 시작한 것이 교회 개혁의 시초다. 당시 전파된 구텐베르크의 활자술은 큰 도움을 줬다. 그의 논제는 15일 만에 독일 전역에서 읽혀졌다고 한다.

    루터의 개혁으로 유럽은 교회와 세속이 일치한 중세가 끝나고 교회와 세속이 분리되는 근대가 시작됐다. 그 후 각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종교전쟁도 벌어졌다. 특히 독일에선 루터 개혁 100년 뒤인 1618년부터 가톨릭교와 신교도의 전쟁이 30년간 전개됐다. 무엇보다 루터 개혁은 종교개혁에서 출발했지만 사회개혁이나 경제개혁으로 확산됐다. 루터의 사상은 종교개혁가 칼뱅으로 옮겨져 근대 자본주의를 낳은 배경이 됐다.

    올해는 루터 개혁 500년이 되는 해다. 마침 오늘은 루터가 사망한 지 471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독일은 서서히 축제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다. 루터를 찾아가는 여행상품도 벌써 인기다. 독일 정부도 루터의 종교개혁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정작 루터는 개혁 이후 500년간 펼쳐진 인류의 기적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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