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이후 진전된 자유무역 및 세계화와 함께 국가 간 수출입 및 직접투자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세계화는 많은 국가에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줬지만 숙련 노동자 대비 비숙련 노동자의 상대적 수요가 감소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 제조업 비숙련 임금은 숙련 임금에 비해 증가속도가 낮았고, 비숙련 고용은 숙련 고용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감소했다. 한국 성장의 엔진이던 수출 역시 비숙련 노동에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을까.

1990~1998년 한국 제조업체(연도별 약 6만9000~9만7000개) 데이터를 분석한 필자의 논문에 따르면 그 대답은 ‘예스(yes)’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수출업체는 비수출업체에 비해 숙련 노동(사무직) 고용 비중이 높고 비숙련 노동(생산직) 고용 비중이 낮다. 숙련도 간 임금 격차도 수출업체에서 더욱 크다. 1994년 비수출업체의 숙련 노동 고용 비중은 평균 약 19%였으나 수출업체는 평균 약 28%로 나타났다. 비수출업체의 숙련 노동과 비숙련 노동의 임금 수준은 비슷한 반면 수출업체에서는 숙련 노동이 비숙련 노동보다 약 13% 높은 임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실만 가지고는 수출이 비숙련 노동의 상대 수요를 감소시킨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수출의 순수한 효과를 추정하기 위해 필자는 수출을 하지 않다가 수출을 시작한 업체들과 같은 업종이고 종업원 수와 매출이 비슷하지만 수출시장에 참가하지 않은 업체를 골라냈다. 이 두 그룹의 숙련 노동자 고용 비중,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격차를 비교한 결과 수출은 그 업체의 숙련 노동 고용 비중을 높이고, 숙련도별 임금격차를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출이 비숙련 노동에 절대적으로 해를 끼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비숙련 노동의 고용 및 임금의 절대적 수준은 수출로 인해 오히려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수출기업은 수출을 시작하기 2년 전과 비교하면 수출을 시작하기 1년 전 비숙련 노동자를 평균 11% 더 고용했다. 수출 시작 3년 후에는 비숙련 노동자를 약 29% 더 고용했다.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 역시 수출을 시작하기 2년 전보다 수출을 시작한 해에 약 2% 늘어났고 수출을 시작한 3년 뒤에는 약 9%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숙련 노동자의 고용은 수출을 시작하기 2년 전보다 수출을 시작한 뒤 1년 후 11%로, 3년 후에는 44%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숙련 노동자의 임금은 각각 약 1%, 14% 증가했다.

논문의 중요한 결과는 기업의 수출 행위가 비숙련 노동자의 절대적인 임금이나 고용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나 숙련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결국 수출은 한국 경제성장의 엔진이기도 했지만 비숙련 노동의 상대적 지위 악화라는 부정적 효과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무역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수출의 긍정적 효과를 십분 활용해야 하겠지만 사회안전망 확충, 재분배 기능 강화 등을 통해 자유무역의 혜택에서 소외된 계층을 포용하는 정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진희 < 가천대 경제학과 교수 >

◆이 글은 <국제경제연구>에 실린 ‘수출이 사업체의 숙련노동 상대 수요에 미치는 영향: 제조업 사업체 자료를 이용한 분석’을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