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검증된 이론만 좇는 연구론, 혁신신약 결코 못 만들지요"
“혁신신약연구소를 따로 만들어주십시오. 이게 제 조건입니다.”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던 윤태영 동아에스티 혁신신약연구소장은 2013년 동아에스티로 자리를 옮기면서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경쟁약이 없는 새로운 치료제인 혁신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존 연구방식과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연구를 시작한 지 2년 만인 2015년 혁신신약연구소는 암세포가 자라도록 하는 특정 단백질(MerTK)을 억제하는 면역항암제 물질을 발견해냈다. 지난해엔 다국적 제약사 애브비와 5억2500만달러(약 6351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임상시험을 어느 정도 한 상태가 아니라 신약물질을 탐색하는 개발 초기 단계에서 대규모 수출 계약이 성사된 것이어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윤 소장은 “혁신신약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치료제인 만큼 물질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다”며 “국내 제약사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혁신신약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소장은 혁신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기존 연구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소장은 “혁신신약을 만들려면 새로운 가설·이론을 바탕으로 물질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내 제약사에는 이런 연구문화와 조직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국내 제약산업은 개량신약, 복제약(제네릭) 등 앞서 개발된 제품을 쫓아가는 상품 개발부터 시작해 온 만큼 기존 신약 연구소들도 이미 검증된 이론을 바탕으로 신약을 만드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 없던 신약인 혁신신약을 내놓기 위해서는 이런 기존 연구문화와 조직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 윤 소장의 생각이다.

그는 “과거 한국 자동차기업들은 부품을 수입해 조립했지만 지금은 엔진과 디자인에 대한 핵심 기술을 확보해 해외 다국적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며 “제약사들도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생물학적 가설을 세우고 이 가설을 검증해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유기화학, 분자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로 인적 구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했다.

그는 혁신신약연구소가 성과를 낸 만큼 동아에스티 연구소 체제에도 변화를 줄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 일반 신약을 개발하는 신약연구소, 개량신약과 천연물신약 등을 만드는 제품개발연구소 등으로 분산된 연구소를 혁신신약연구소처럼 바꿀 계획이다. 연구분야도 면역항암제와 치매 등으로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윤 소장은 “혁신신약연구소를 설치하고 신약개발에 대한 접근 방식과 문화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며 “내가 자리에 없더라도 동아에스티가 혁신신약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구조와 조직문화를 만들어 놓고 싶다”고 말했다.

용인=김근희 기자 tkfcka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