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허위 진단서 끊고 1000만원 나눠 먹자"…실손보험 사기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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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가입자 등치는 보험사 직원·브로커·의사의 '부당거래'
브로커들, 환자들에게 접근…'보상금 타내기' 은밀히 제안
후유장해 보험 주로 노려…불법 보상금에 가입자만 피해
영업력 뛰어난 브로커, 한달에 수천만원 벌기도
일부 의사 '용돈' 욕심에 협조…보험사 직원들도 '한통속'
브로커들, 환자들에게 접근…'보상금 타내기' 은밀히 제안
후유장해 보험 주로 노려…불법 보상금에 가입자만 피해
영업력 뛰어난 브로커, 한달에 수천만원 벌기도
일부 의사 '용돈' 욕심에 협조…보험사 직원들도 '한통속'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해 한 건물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쳤다. 십자인대가 파열돼 꼼짝없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병실에 누워있는데 한 청년이 주고 간 전단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실손보험 제대로 알고 제대로 보상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안 그래도 2년 전 가입한 실손보험으로 병원비를 모두 충당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전화를 걸자 B씨는 스스로를 ‘실손보험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그러고는 이것저것 캐물었다. A씨가 계약한 실손보험 상품에 후유장해보험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은밀한 제안’을 했다. B씨는 “무릎관절이 파열돼 걷지 못한다는 진단서를 끊으면 병원비는 물론이고 1000만원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속삭였다. 대신 보상금의 50%를 달라고 했다. A씨는 ‘매달 꼬박꼬박 낸 보험료가 얼만데…’라는 생각에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B씨는 “진단서를 끊어주는 의사에게 주는 수수료 20만원은 별도”라며 “보험사 직원도 다 눈감아주는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귀띔했다. A씨와 B씨는 각각 490만원을 챙겼다. 보험사 직원이 조사도 나왔지만 B씨 말대로 ‘뒤탈’은 없었다.
3400만여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을 둘러싼 브로커 사기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짜 환자-브로커-의사-보험사 직원’ 사이의 부당거래가 보험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기 대가, 보상금의 20~70%
24일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실손보험과 후유장해보험 등 장기손해보험 사기 피해가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장기손해보험 사기 피해금액은 2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상반기에만 1351억원으로 2013년 한 해 피해금액(1296억원)을 웃돌았다.
장기손해보험 사기에는 ‘브로커’가 엮여 있다. 전국적으로 수백명이 넘는 브로커가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주로 개인으로 활동한다. 주로 전직 보험사 직원이나 병원 원무과 직원 출신이다. 보험 관련 법적 지식이 풍부하고, 의사 인맥이 두텁다는 공통점이 있다.
브로커가 주로 노리는 것은 후유장해보험금이다. 후유장해보험은 사고나 질병으로 영구적인 장애가 생기면 보상금을 수령하는 보험 상품이다. 보상금이 수천만원에 달해 브로커에게 떨어지는 ‘성공 보수’가 많다. 성공 보수 비율은 보험금 수령 난이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20~50%지만 상식적으로 장애 진단을 받지 못할 환자가 보상금을 타게 해주면 70%까지 뛴다. ‘영업력’이 뛰어난 브로커는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번다고 한다.
일부 보험사 직원들은 브로커 묵인
일부 의사들은 물밑에서 협력한다. ‘용돈 벌이’로 브로커에게 수십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허위·과잉 진단서를 써준다. 보험업계에는 상습적으로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주는 ‘블랙리스트’도 떠돈다. 서울 강북의 한 병원 H의사는 뇌졸중 과잉 진단으로 보험업계에서 악명이 높다. 일반적인 보험업계 기준에 따르면 뇌혈관이 50% 이상 막혀야 뇌졸중 진단을 받을 수 있지만 H의사는 혈관이 10%만 막혀도 뇌졸중으로 진단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의사들은 보험사 직원이 의학적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다”며 “수년 전부터 자료를 모으며 H의사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지만 입증이 말처럼 쉽진 않다”고 말했다.
일부 보험사 임직원까지 ‘한통속’인 경우도 많다. 브로커는 보험사 직원 실적도 챙겨준다. 대부분의 보험사는 환자가 처음 청구한 보험금보다 적은 돈을 지급하게 되면 현장 직원의 실적으로 인정한다. 이런 사정을 아는 브로커들은 보험사 직원의 실적을 챙겨주기 위해 처음부터 원하는 보험금보다 많은 금액을 써내 직원들을 돕는다. 브로커들은 환자 세 명의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 직원이 두 명은 통과시키고 한 명은 반려하는 식으로 각본을 짠다. 한 보험사 직원은 “직원과 브로커 사이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담당 임원이 브로커와 결탁한 회사가 꽤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전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보험 소비자 몫
1차적인 피해는 보험사가 본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2013년 115.5%에서 2014년 122.8%, 2015년 122.1%로 매년 100%를 넘었다.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보다 지급한 보험금이 더 많다는 의미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상위 10% 고액 수령자가 전체 보험금의 최대 63%를 타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량한 실손보험 가입자가 영문도 모른 채 보험 사기 피해를 메우고 있다. 실손보험 가입자의 76.8%(2014년 기준)는 보험금을 한 번도 받은 적 없이 보험료만 내고 있다. 보험연구원과 보험개발원은 보험 가입자 한 명당 한 해 8만9000원(전체 4조5000억원)을 부당하게 부담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 실손보험료는 매년 오르고 있다. 보험사들은 2015년 10월 보험가격 자율화 조치 이후 손해율이 높은 실손보험 중심으로 보험료를 인상해왔다. 주요 보험사들은 지난해 평균 20% 올린 데 이어 올 들어서도 20%가량 추가 인상했다. 실손보험 가입자의 의료비 전액 보장도 2009년 상품부터 사라졌다. 그해 최소 자기부담금 10%가 신설됐고, 2015년엔 20%로 늘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선량한 보험 가입자가 보험사기 누수금을 대신 내는 부당한 구조”라며 “보험사기를 없애면서 실손보험 제도도 수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손해보험의 종류
◎ 실손보험
병원 및 약국에서 실제로 지출한 의료비를 최대 90%까지 보상해주는 보험. 가입자 수가 3400만명(2015년 기준)에 이른다.
◎ 후유장해보험
신체적 혹은 정신적 기능에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으면 심각성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는 보험. 실손보험 가입자 90% 이상이 후유장해보험에 중복 가입돼 있다.
◎ 암진단보험
암 진단시 미리 약정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보험.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전화를 걸자 B씨는 스스로를 ‘실손보험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그러고는 이것저것 캐물었다. A씨가 계약한 실손보험 상품에 후유장해보험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은밀한 제안’을 했다. B씨는 “무릎관절이 파열돼 걷지 못한다는 진단서를 끊으면 병원비는 물론이고 1000만원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속삭였다. 대신 보상금의 50%를 달라고 했다. A씨는 ‘매달 꼬박꼬박 낸 보험료가 얼만데…’라는 생각에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B씨는 “진단서를 끊어주는 의사에게 주는 수수료 20만원은 별도”라며 “보험사 직원도 다 눈감아주는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귀띔했다. A씨와 B씨는 각각 490만원을 챙겼다. 보험사 직원이 조사도 나왔지만 B씨 말대로 ‘뒤탈’은 없었다.
3400만여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을 둘러싼 브로커 사기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짜 환자-브로커-의사-보험사 직원’ 사이의 부당거래가 보험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기 대가, 보상금의 20~70%
24일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실손보험과 후유장해보험 등 장기손해보험 사기 피해가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장기손해보험 사기 피해금액은 2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상반기에만 1351억원으로 2013년 한 해 피해금액(1296억원)을 웃돌았다.
장기손해보험 사기에는 ‘브로커’가 엮여 있다. 전국적으로 수백명이 넘는 브로커가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주로 개인으로 활동한다. 주로 전직 보험사 직원이나 병원 원무과 직원 출신이다. 보험 관련 법적 지식이 풍부하고, 의사 인맥이 두텁다는 공통점이 있다.
브로커가 주로 노리는 것은 후유장해보험금이다. 후유장해보험은 사고나 질병으로 영구적인 장애가 생기면 보상금을 수령하는 보험 상품이다. 보상금이 수천만원에 달해 브로커에게 떨어지는 ‘성공 보수’가 많다. 성공 보수 비율은 보험금 수령 난이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20~50%지만 상식적으로 장애 진단을 받지 못할 환자가 보상금을 타게 해주면 70%까지 뛴다. ‘영업력’이 뛰어난 브로커는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번다고 한다.
일부 보험사 직원들은 브로커 묵인
일부 의사들은 물밑에서 협력한다. ‘용돈 벌이’로 브로커에게 수십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허위·과잉 진단서를 써준다. 보험업계에는 상습적으로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주는 ‘블랙리스트’도 떠돈다. 서울 강북의 한 병원 H의사는 뇌졸중 과잉 진단으로 보험업계에서 악명이 높다. 일반적인 보험업계 기준에 따르면 뇌혈관이 50% 이상 막혀야 뇌졸중 진단을 받을 수 있지만 H의사는 혈관이 10%만 막혀도 뇌졸중으로 진단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의사들은 보험사 직원이 의학적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다”며 “수년 전부터 자료를 모으며 H의사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지만 입증이 말처럼 쉽진 않다”고 말했다.
일부 보험사 임직원까지 ‘한통속’인 경우도 많다. 브로커는 보험사 직원 실적도 챙겨준다. 대부분의 보험사는 환자가 처음 청구한 보험금보다 적은 돈을 지급하게 되면 현장 직원의 실적으로 인정한다. 이런 사정을 아는 브로커들은 보험사 직원의 실적을 챙겨주기 위해 처음부터 원하는 보험금보다 많은 금액을 써내 직원들을 돕는다. 브로커들은 환자 세 명의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 직원이 두 명은 통과시키고 한 명은 반려하는 식으로 각본을 짠다. 한 보험사 직원은 “직원과 브로커 사이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담당 임원이 브로커와 결탁한 회사가 꽤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전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보험 소비자 몫
1차적인 피해는 보험사가 본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2013년 115.5%에서 2014년 122.8%, 2015년 122.1%로 매년 100%를 넘었다.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보다 지급한 보험금이 더 많다는 의미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상위 10% 고액 수령자가 전체 보험금의 최대 63%를 타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량한 실손보험 가입자가 영문도 모른 채 보험 사기 피해를 메우고 있다. 실손보험 가입자의 76.8%(2014년 기준)는 보험금을 한 번도 받은 적 없이 보험료만 내고 있다. 보험연구원과 보험개발원은 보험 가입자 한 명당 한 해 8만9000원(전체 4조5000억원)을 부당하게 부담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 실손보험료는 매년 오르고 있다. 보험사들은 2015년 10월 보험가격 자율화 조치 이후 손해율이 높은 실손보험 중심으로 보험료를 인상해왔다. 주요 보험사들은 지난해 평균 20% 올린 데 이어 올 들어서도 20%가량 추가 인상했다. 실손보험 가입자의 의료비 전액 보장도 2009년 상품부터 사라졌다. 그해 최소 자기부담금 10%가 신설됐고, 2015년엔 20%로 늘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선량한 보험 가입자가 보험사기 누수금을 대신 내는 부당한 구조”라며 “보험사기를 없애면서 실손보험 제도도 수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손해보험의 종류
◎ 실손보험
병원 및 약국에서 실제로 지출한 의료비를 최대 90%까지 보상해주는 보험. 가입자 수가 3400만명(2015년 기준)에 이른다.
◎ 후유장해보험
신체적 혹은 정신적 기능에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으면 심각성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는 보험. 실손보험 가입자 90% 이상이 후유장해보험에 중복 가입돼 있다.
◎ 암진단보험
암 진단시 미리 약정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보험.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