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봄의 길목에서
1년 전, 필자는 국회 진출을 놓고 장고했다. 바둑으로 60년 가까이 살아 왔고, 다행히 성과도 있어 나름 일가(一家)를 이뤘다는 과분한 평가도 받았다. 그렇지만 한 분야에서 잘했다고 해서 다른 영역에서도 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곰곰이 따져보고, 의견도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바둑계에서는 찬반양론, 네티즌 쪽은 회의론이 많았다. 칼럼니스트들의 반대 의견도 있었다. 선거 전에는 당연히 여당 프리미엄을 기대하겠지만, 총선 패배의 결과를 예견하며 딱 부러지게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옛 스승 세고에 선생이라면 말리셨을 것 같다. 한 분야에 목숨을 걸 듯 최선을 다한다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를 실천한 선생이라면 다시 한 번 파문을 선고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또 한 분, 후지사와(藤澤秀行) 선생은 도전하라고 넌지시 등을 떠미셨을 것도 같다. 선생의 평소 지론은 ‘젊은이는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 젊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신이 여전하니 열심히 하라고 하셨을 것 같다.

필자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흥하느냐 쇠하느냐는 전환기에 처한 한국 바둑계의 현실이 이끈 측면도 분명히 있다. 19대 국회에서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바둑 진흥의 과제도 무겁게 인식됐다. 처음부터 정치를 잘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바둑을 비롯해서 문화·스포츠·교육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순기능을 구현해보자,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가치들을 사회로 확장하고 전승하는 역할을 해보자고 스스로를 북돋우며 결심했다.

국회에 들어오고 난 다음은 솔직히 애초의 전망과는 좀 달랐다. 다수당이 되지도 못했고, 대통령 탄핵사태라는 거대 이슈 앞에 웬만한 담론은 제자리를 찾기 어려운 형국이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것일까.

필자는 2년 전 출간한 졸저 《고수의 생각법》에 이렇게 썼다. ‘바둑에서는 악수는 절대로 두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인생은 다르다. 악수인지 알면서도 놓아야 할 때가 있다.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을 때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다.’ 인터뷰에서도 “뭐든지 생각만 하지 말고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말해왔다.

올겨울은 늦게까지 제법 춥다.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 코앞인데 거리를 휘감는 칼바람은 여전히 매섭다. 하지만 꽃 소식은 남녘으로부터 어김없이 올라온다. 여의도의 가로수들도 가지마다 움을 틔우고 있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다가오는 봄의 햇살은 틀림없이 강렬할 것이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의 터널을 지나 따뜻한 봄을 맞이하듯 어느 해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앞길에도 벚꽃처럼 화사한 봄날이 오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필자도 봄을 기다리며, 이 봄의 길목에서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출사표를 써본다.

조훈현 <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chohoonh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