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사회적 기생충 방지법'
‘유럽의 백의민족’ ‘백(白)러시아’로 불리는 동유럽의 벨라루스. 흰옷과 하얀색 집을 좋아하는 백색 피부의 나라다. 한반도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약 960만명. 1922년 소련에 편입됐다가 소비에트연방 붕괴와 함께 1991년 독립했다.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고국이기도 하다.

이 나라가 연일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위 구호는 ‘실업세 반대’다. 실업세란 일할 수 있는데도 반년 이상(183일) 일하지 않고 국가고용센터에도 등록하지 않은 사람에게 460벨라루스 루블(약 28만원)을 물게 하는 일종의 벌금이다. 평균 월급의 절반이 좀 넘는 금액이다. 그러나 대상자 가운데 돈을 낸 사람이 10%도 안 될 정도로 저항이 세다.

실업세는 2015년 ‘건강한 국민이 노동에 종사하면서 정부 지출의 일부를 감당하는 헌법상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돕자’는 취지로 시행됐다. 예외는 학생과 장애인, 55세 이상 여성, 60세 이상 남성, 3자녀 부모 등으로 국한했다. 경제활동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놀고먹는 사람을 없애자는 뜻의 ‘사회적 기생충 방지법’으로도 불렸다.

그 이면에는 국가 경제를 지탱할 노동력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 나라는 옛 소련처럼 중앙집권적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국영 기업에 퇴직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일손이 모자라는 상황이다. 2012년에는 임업 관련 기업, 지난해에는 국영농장 근무자들에게도 퇴직 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2015년 이후 러시아 경제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준비 안 된 실업자’가 갑자기 늘게 됐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실업세 대상자도 늘어났다.

실업세법은 과거 소련에도 있었다. 일자리 잃은 것도 서러운데 세금까지 짊어져야 하느냐는 비판으로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 이후 없어졌다. 어느 나라나 실업 문제는 골칫거리다. 생산과 복지 문제까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핀란드가 ‘기본소득제’를 도입한 것도 궁여지책이다. 기존 실업수당과 달리 실업자에게 아르바이트 등의 저임 일자리가 생겨도 월 70만원을 보장하는 대신 각종 복지제도를 없애는 것이 골자다. 행정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벨라루스의 몸살이나 핀란드의 실험은 모두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생긴 일이다.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근로 의욕을 높이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세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는 없는 것일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