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서로 다름의 인정에 대하여
지금부터 30여년 전 어느 날 내가 질겁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을 목격했다. 나의 두 아들이 서로 밥그릇을 가지고 다투었는데, 서로 작은 밥그릇을 차지하려 한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항상 밥 한 톨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밥을 남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너 마지기 농사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서 항상 배가 고팠다. 저녁을 먹고 나서 숭늉 그릇에 있던 누룽지 몇 톨이 먹고 싶어서 그 물을 다 들이켜고 나서야 누룽지를 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나의 놀라움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어린 시절의 어려움과 절실함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나의 소명이자 의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세운 기준을 그들 나름의 전략으로 지키고자 식탁 앞에서 다투고 있는 나의 아이들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입지에 따라 생각하고 감안해야 할 일과 범위가 많아지고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다양성의 문제인 것이다.

내게는 언제나 기쁨을 주는 손자 놈들이 있다. 그중 한 녀석은 내게 갑자기 “사람은 맨 처음에 어떻게 이 세상에 생겨났어요?”라든지 또는 “세상은 맨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어요?”라며 우리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인 질문들을 해 댄다. 나는 그 녀석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과학적 사고의 틀 안에서 그의 삶과 괴리되지 않는 대답을 해야 한다. 또한 마음 속 깊이에서 이렇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손자를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하며, 으쓱해지는 기분으로 칭찬했다.

또 다른 손자 녀석은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그러나 물속에 자신의 조그마한 장난감이 빠졌다고 하는 순간 그 녀석은 그냥 자기 몸을 물속에 던지면서 그 장난감을 꺼내려 노력한다.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그 녀석의 태도에도 내 얼굴과 마음은 빙그레 미소짓게 된다.

나는 아버지로서 또 할아버지로서 세대를 건너며 시간을 초월하며 아들들과 손주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치라고 생각한다.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도 이럴진대 한 국가를 이끌어 가는 것이야말로 수많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끌어안으며 제도적 틀을 완성해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유영희 < 유도그룹 회장 cmyu@yudoho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