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정부 편향된 지원 바로잡으려…문화 정책 범죄될 수 없어"

이른바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비정상을 정상화하려 한 정책 수행이 직권남용이 될 수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김 전 비서실장의 변호인은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대통령의 문화·예술 정책이 범죄가 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변호인은 "이번 사건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 정책에 대해 반대세력이 '직권남용'이라는 잘못된 논리로 접근하고 있는 정치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좌파 진보세력에게 편향된 정부의 지원을 균형있게 집행하려는 정책, 즉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정책이 직권남용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또 "김 전 실장의 범죄사실은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된다는 것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아 명확성이 결여돼 있다"며 "비서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9번에 걸친 발언을 나열해 놓으면서 이를 범죄행위를 지시한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의 행위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강요의 상상적 경합범(하나의 행위가 동시에 여러 개의 범죄를 구성)으로 기소했는데, 김 전 실장이 어떻게 직권을 남용했다는 것인지, 어떤 행위가 강요죄에 있어 폭행 또는 협박에 해당한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기재가 없다"고도 지적했다.

변호인은 국회에서 블랙리스트에 관해 거짓 증언을 한 혐의(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대해서도 "국회에서 증언한 블랙리스트가 어떤 것인지 특정해달라"며 혐의를 부인하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함께 기소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측도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조치와 관련해 전체 기획·집행,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고, 공소사실 중 일부는 실체적 진실과 다르거나 평가가 달리 해석돼야 한다"며 혐의를 일부 부인한다고 말했다.

다만 "블랙리스트에 의한 지원배제 조치가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데 대해 전직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으로서, 직전 문체부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심려를 끼쳐 머리숙여 사과한다"고 말했다.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측은 "구체적으로 김 전 수석이 어떻게 관여했다는 것인지 특정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취지로 말했다.

김소영 전 교육문화체육비서관 측도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 4명은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고, 이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등이 보조금을 주지 못하게 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등으로 기소됐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국회에서 블랙리스트에 관해 거짓 증언을 한 혐의(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도 기소됐다.

이날 구속 상태인 김 전 실장이나 조 전 장관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수석과 김 전 비서관은 직접 법정에 나왔다.

공판준비 절차는 정식 공판과 달리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는 없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 등 피고인 측에서 증거 의견 정리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 다음달 15일 준비절차를 다시 열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황재하 기자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