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까지 서울 정동극장에서 공연하는 판소리 뮤지컬 ‘적벽’.
오는 26일까지 서울 정동극장에서 공연하는 판소리 뮤지컬 ‘적벽’.
어깨엔 잔뜩 힘이 들어갔다. 한꺼번에 여러 곳에 가겠다며 힘차게 내달렸으나 어디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1일 서울 정동극장 무대에 오른 판소리 뮤지컬 ‘적벽’ 이야기다.

‘적벽’은 정동극장이 올해 새로 선보이는 ‘창작ing’ 프로그램의 첫 공연이다. 지난해 중앙대 예술대학 전통예술학부 학생들이 만들어 공연한 ‘적벽무’를 발굴해 다듬었다. 이 작품은 지난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대학생 부문 우수상을 받았고, 현대자동차그룹과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가 주최하는 H스타 페스티벌에서도 금상을 수상했다.

공연은 판소리 다섯마당 중 적벽가를 재해석했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부터 적벽대전, 전후 조조가 이끄는 위나라 군의 패주까지를 다뤘다. 세 의형제와 제갈공명, 조조 등 다섯 명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배우 20여명이 군무진으로 나섰다.

대학생 공연 당시 출연진 25명 중 17명이 이번 공연에도 참여했다. 막이 오르자 붉은 조명을 받으며 무대 중앙에 선 배우 9명이 힘껏 북을 치고, 나머지 군무진은 양 옆에서 기합 소리로 가세했다. 초반부터 젊은 출연진이 내뿜는 에너지가 객석까지 와닿았다.

열의가 지나쳤던 것일까. 극은 시종일관 강하고 꽉 찬 표현을 내세운다. 크지 않은 무대에서 장면마다 평균 10명가량의 군무진이 등장한다. 주연 배우의 연기와는 별개로 무대를 누비며 각자 역동적인 몸짓을 선보인다. 판소리 해설과 대사는 대부분 군무진의 합창으로 처리했다. 주인공의 사설 부분에서도 이들이 목소리를 거든다. 군무진의 지나친 개입이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다. 삼고초려 중 공명을 설득하는 유비의 의지도, 전쟁에 패해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은 조조의 심정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이유다.

공연은 전통 판소리부터 뮤지컬식 합창, 현대무용 등을 아우르려 한다. 뮤지컬과 연극, 소리를 각각 전공한 배우들이 각자의 특색을 살리지 못한 채 모두 비슷한 역을 맡았다. 이도 저도 아닌 소리와 몸짓은 어느 한쪽의 매력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판소리 합창도 그렇다. 시차를 두고 여럿이 내는 소리에선 시김새 등 판소리 특유의 섬세함을 찾을 수 없었다.

소재가 주는 필연적인 한계도 보인다. 판소리 적벽가는 완창에 약 3시간30분이 걸리는 대작이다. 방대한 이야기를 75분 분량의 공연으로 풀어내려니 극은 끊임없이 주요 장면만을 나열한다. 비장한 적벽대전 후 조조의 패잔병들이 나와 서로 재담을 주고받는다. 이어지는 장면에선 갑자기 고향 생각을 하며 슬퍼하는 노래를 부른다. 직후엔 복병을 만나 소란스러운 싸움에 휩싸인다. 클라이맥스만 바쁘게 이어지다 보니 관객이 감정을 쌓아갈 자리가 없다.

극의 규모에 비해 출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음향도 문제다. 국악 타악과 드럼 세트, 베이스, 키보드, 피리 연주에 20여명의 합창이 더해지니 대사를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소리가 깨졌다. 배우들은 젊은 혈기를 가감없이 쏟아냈다. 에너지는 대단했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한 균형잡기가 아쉬웠다. 26일까지. 3만~5만원. (02)751-1500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