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지멘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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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훈 <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좋은 기술을 가진 것은 금광을 가진 것과 같다.’ 독일 속담이다. 독일에 히든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이 많은 것은 기술 중시 문화에서 비롯된다.
스마트공장으로 유명한 지멘스는 370여만개에 이르는 독일 기업 가운데 특허를 가장 많이 가진 업체다. 지난 회계연도 말 기준으로 보유한 특허권이 5만9800여건에 이른다. 베르너 폰 지멘스라는 발명가가 1847년 세운 지멘스는 올해로 170년을 맞았다.
혁신 수용 문화가 발전 원동력
이 회사가 발전 송변전 스마트공장 의료기기 등에서 세계 선두를 질주할 수 있게 만드는 엔진은 ‘이노베이션(기술 혁신)’이다. 지난 회계연도에만 연구개발비로 47억유로(약 5조6200억원)를 쏟아부었다. 매출 796억유로(약 95조원)의 5.9%에 이른다. 포천 1000대 기업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투자 비율이 평균 3.6%인 것과 비교할 때 얼마나 연구개발에 집중하는지 알 수 있다.
이 회사는 혁신적인 제품을 ‘수용’하는 문화도 갖고 있다. ‘전자부품 3차원검사장비’를 개발해 1800여개 기업에 공급하는 고영테크놀러지는 창업 초기 해외시장 개척에 애를 먹었다. 처음 도전한 시장은 대만이었다. 테스트 결과 최고의 성능을 입증받았지만 업력이 짧다는 이유로 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숨통이 트인 것은 지멘스에 납품하면서부터였다. 지멘스는 자체 테스트를 거쳐 고영의 제품이 가장 뛰어나다고 결론짓고 구매했다. 당시 지멘스는 약 200개국에서 제품을 파는 세계적인 기업이고, 고영은 창업한 지 고작 2년밖에 안 된 신생기업이었지만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고영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내에선 어떤가. 중소기업이 신제품·신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를 인정받는 일은 더 어렵다. 경기도 소재 A사는 의료용 측정장비를 개발해 각종 인증을 획득하고 2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공공기관은 뚫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의 K사장은 “공공기관에선 갖가지 이유를 들어 국산을 외면하고 두 배 이상 비싼 외국산을 고집한다”고 하소연했다.
기술 안목 없으면 혁신 '공염불'
경기도에 있는 B사는 혁신적인 기계부품을 개발해 히타치 등 일본 굴지의 업체에 수출하고 있지만 금융회사에 대출받으러 가면 ‘담보가 없다’거나 ‘재무제표가 나쁘다’며 외면당한다. 이 회사 K사장은 “수년간 제품개발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얻은 게 기술뿐인데 무슨 담보가 있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서울의 자동화장비업체 C사는 첨단조립장비를 개발해 도요타 등 일본에 공급하고 있지만 국내 수요처는 제값을 쳐주기는커녕 ‘원가가 얼마냐’며 따지는 통에 눈물을 머금곤 했다. 공공기관, 금융회사, 거래처는 혁신을 부르짖지만 실제 현장에선 오로지 담보와 재무제표, 납품실적만 따진다. 혁신은 액자 속의 ‘구호’일 뿐이다.
영국은 1차 산업혁명 이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구축했다. 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 유일의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한국의 기업과 정부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하지만 혁신을 수용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으면 산업혁명의 싹이 움트기는 어렵다. 혁신을 홀대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김낙훈 <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스마트공장으로 유명한 지멘스는 370여만개에 이르는 독일 기업 가운데 특허를 가장 많이 가진 업체다. 지난 회계연도 말 기준으로 보유한 특허권이 5만9800여건에 이른다. 베르너 폰 지멘스라는 발명가가 1847년 세운 지멘스는 올해로 170년을 맞았다.
혁신 수용 문화가 발전 원동력
이 회사가 발전 송변전 스마트공장 의료기기 등에서 세계 선두를 질주할 수 있게 만드는 엔진은 ‘이노베이션(기술 혁신)’이다. 지난 회계연도에만 연구개발비로 47억유로(약 5조6200억원)를 쏟아부었다. 매출 796억유로(약 95조원)의 5.9%에 이른다. 포천 1000대 기업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투자 비율이 평균 3.6%인 것과 비교할 때 얼마나 연구개발에 집중하는지 알 수 있다.
이 회사는 혁신적인 제품을 ‘수용’하는 문화도 갖고 있다. ‘전자부품 3차원검사장비’를 개발해 1800여개 기업에 공급하는 고영테크놀러지는 창업 초기 해외시장 개척에 애를 먹었다. 처음 도전한 시장은 대만이었다. 테스트 결과 최고의 성능을 입증받았지만 업력이 짧다는 이유로 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숨통이 트인 것은 지멘스에 납품하면서부터였다. 지멘스는 자체 테스트를 거쳐 고영의 제품이 가장 뛰어나다고 결론짓고 구매했다. 당시 지멘스는 약 200개국에서 제품을 파는 세계적인 기업이고, 고영은 창업한 지 고작 2년밖에 안 된 신생기업이었지만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고영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내에선 어떤가. 중소기업이 신제품·신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를 인정받는 일은 더 어렵다. 경기도 소재 A사는 의료용 측정장비를 개발해 각종 인증을 획득하고 2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공공기관은 뚫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의 K사장은 “공공기관에선 갖가지 이유를 들어 국산을 외면하고 두 배 이상 비싼 외국산을 고집한다”고 하소연했다.
기술 안목 없으면 혁신 '공염불'
경기도에 있는 B사는 혁신적인 기계부품을 개발해 히타치 등 일본 굴지의 업체에 수출하고 있지만 금융회사에 대출받으러 가면 ‘담보가 없다’거나 ‘재무제표가 나쁘다’며 외면당한다. 이 회사 K사장은 “수년간 제품개발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얻은 게 기술뿐인데 무슨 담보가 있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서울의 자동화장비업체 C사는 첨단조립장비를 개발해 도요타 등 일본에 공급하고 있지만 국내 수요처는 제값을 쳐주기는커녕 ‘원가가 얼마냐’며 따지는 통에 눈물을 머금곤 했다. 공공기관, 금융회사, 거래처는 혁신을 부르짖지만 실제 현장에선 오로지 담보와 재무제표, 납품실적만 따진다. 혁신은 액자 속의 ‘구호’일 뿐이다.
영국은 1차 산업혁명 이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구축했다. 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 유일의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한국의 기업과 정부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하지만 혁신을 수용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으면 산업혁명의 싹이 움트기는 어렵다. 혁신을 홀대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김낙훈 <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