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오스카 트로피' 꿈 이룬 제프 베조스
올해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작품상 호명이 번복되며 앞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매해 그렇듯 여러 이슈가 생산되는 아카데미 시상식이지만, 유독 시선을 끈 한 사람은 시상식 중계방송에 잡힌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였다. TED 강연회에 앉아 있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한 정보기술(IT)업계의 거물 CEO 베조스는 투자 배급사 사장 자격으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청됐다. 이 낯선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자 사회자 키미 카멜은 “베조스, 당신이 오늘 오스카를 수상하면 트로피는 영업일로부터 2~5일 안에 배송될 겁니다”는 아마존을 빗댄 농담을 건넸는데, 이 농담은 농담으로 끝나지 않았다.

베조스는 2010년대 들어서 아마존의 자회사 ‘아마존 프라임’을 설립해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 ‘OTT(Over The Top)’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독자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는 ‘아마존 스튜디오’를 출범시켜 콘텐츠 투자 제작사로 발돋움했다. 2015년 인터뷰를 통해 “오스카 트로피를 원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바 있는 베조스의 꿈은 이날 결국 이뤄졌다. ‘아마존 스튜디오’의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세일즈맨’까지 무려 세 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가는 데 성공한 것이다. IT업계 태생의 신생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전통의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를 제치고 강력한 콘텐츠 스튜디오로 이름을 알린 것이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로 간주되던 OTT 사업자가 전통적 영화산업의 장벽을 넘어선 것은 비단 오스카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 2월 오스카 직전에 열린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 시상식에서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최고 다큐멘터리상 및 남우주연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BAFTA는 작년부터 OTT 사업자의 콘텐츠를 심사 대상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OTT서비스의 콘텐츠 경쟁력이 주류를 넘어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TV 드라마 시리즈로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의 단골 수상자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넷플릭스, 아마존이 주도하고 있는 OTT산업은 단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그 역할을 국한하지 않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위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영상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 중이다. 세계 각국의 유명 감독 및 MC들과 손잡고 영화, 드라마를 넘어서 예능, 다큐 프로그램에까지 손을 뻗으며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하고 있다. 며칠 전 한국에서 티저 예고편이 공개된 봉준호 감독의 새 작품 ‘옥자’의 제작사 역시 다름아닌 넷플릭스다. 5000만달러가 투입된 ‘옥자’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관객을 만난다. 전통적 상영 방식으로 개봉할지 아니면 새로운 개봉 방식을 택할지 유통 플랫폼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벌써부터 뜨겁다.

OTT산업의 영역 확장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며 영화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플랫폼 변화에 대한 논쟁은 머지 않아 철 지난 해묵은 논쟁이 될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올해는 흥미로운 한 해가 될 것이다. 또 주목해야 할 한 해가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변화의 지점에서 영상산업 지형도 역시 새롭게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