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통상정책 보고서를 통해 대미(對美) 무역흑자국들에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원하는 결과가 아니다”며 재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수출 확대를 강조하면서 30여년 동안 쓰지 않은 무역법 301조 부활 가능성도 언급했다. 적자를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전방위적인 공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한국 ‘무역적자국’ 적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유세과정에서 중서·북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역)를 돌며 한·미 FTA에 대해 “미국 내 일자리를 죽이는 나쁜 협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미 FTA 체결 후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가 두 배로 늘었고, 미국인들의 일자리도 10만개 잃었다”고 했다. 취임 후 곧바로 재협상에 나설 태세였다.

정작 취임 뒤에는 한·미 FTA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통상공세는 중국과 일본, 독일, 멕시코 등 다른 대미 무역흑자국에 집중됐다. 그러나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1일 공개한 ‘2017 무역정책 아젠다와 2016 연례보고서’에선 미국의 진의가 그대로 드러났다. 미국 무역적자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중국,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들과 함께 한국이 적시됐다.

보고서는 “한·미 FTA는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시행한 가장 큰 무역협정”이라며 “한·미 FTA 체결 직전(2011년 132억달러)에 비해 무역적자가 5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고,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인들이 협정으로부터 기대한 바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분명히 미국은 여러 무역협정에 대한 접근법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WTO 무력화도 추진

USTR은 새로운 무역정책 4원칙으로 △정책에서의 미국 주권 보호 △미국 무역법 우선 적용 △교역국 시장 개방을 위한 모든 가용 수단 활용 △더 나은 무역협정 체결 등을 제시했다.

USTR은 “미국인은 세계무역기구(WTO)의 판정이 아니라 미국 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강조하면서 “트럼프 정부는 무역정책 사안과 관련해 미국 주권을 적극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수입 억제, 수출 장려 목적의 ‘국경조정세(border adjustmet tax)’를 시행했을 때 WTO체제 내에서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이를 어떻게 피할지를 검토 중이다. 중국과 NAFTA 회원국 등을 대상으로 일방적 보복을 가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법적 분쟁 가능성도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USTR 새 대표도 강경파

USTR은 환율조작이나 보조금 지급 등 불공정 무역행위로 미국 기업들에 피해를 주는 행위에 대해서도 무역법 301조 등 강력한 제재수단을 동원해 제재할 뜻임을 밝혔다. 1974년 제정된 무역법 301조는 미국산 상품을 차별하는 국가에 징벌적 관세와 수입제한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01조는 1980년대 일본을 비롯한 몇몇 교역국을 상대로 집행된 적이 있지만 1995년 WTO가 출범한 이후로는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다. USTR은 이를 “외국이 더욱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채택하도록 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표현했다.

높은 관세와 규제 등을 통해 미국 기업들의 진출을 막는 행위에 대해서도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때가 왔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미 언론들은 강경 보호무역주의 성향의 로버트 라이시저 USTR 대표 지명자가 3월 말께 상원 인준을 받으면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윌버 로스 상무장관 등과 함께 본격적인 통상압박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