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대테러 작전 중 전사한 윌리엄 라이언 오언스 중사의 이름을 일곱 번이나 불렀다. 라이언은 최근 예멘에서 알카에다 격퇴 작전을 벌이다 목숨을 잃은 미 해군 특공대원(네이비실). 트럼프는 맏딸 이방카 옆에 앉은 라이언의 부인 캐린을 소개한 뒤 “누구도 제복을 입고 미국을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 용감할 순 없다”며 두 차례나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지켜보던 상·하원 의원들과 군 수뇌부, 대법관, 청중 모두가 벌떡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기립박수는 2분 넘게 이어졌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듯 감정을 추스르던 캐린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미국 언론은 “정치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라며 “트럼프가 (진정한) 대통령이 됐다”고 호평했다. 트럼프와 사사건건 충돌했던 공화당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환상적”이라며 극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트럼프는 “우리는 하나의 목적지를 가졌고, 같은 피를 나눴고, 같은 국기에 경례를 한다”며 모두가 하나가 돼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이제는 우리의 가슴을 채울 꿈들을 공유하고 희망과 꿈을 행동으로 전환할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66분간의 연설 내내 그는 ‘함께’ ‘통합’이란 단어를 반복했다.
CNN 긴급조사에서 시청자의 78%가 “아주 좋았다”고 답했다. 트럼프의 지지도가 40% 안팎에 머물던 점을 감안하면 두 배로 뛴 셈이다. 국방예산을 10% 늘려야 한다고 역설한 대목에서도 자연스레 호응이 이어졌다. 그가 ‘가짜 뉴스’라고 맹비난한 민주당 성향의 ‘동부 언론’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모처럼 만의 호평에 트럼프도 자신의 트위터에 “생큐”라며 화답했다.
격변기의 갈등을 ‘감동’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는 그의 정치력을 보면서 우리를 돌아본다. 2002년 제2 연평해전 영결식뿐 아니라 이후 기념식 때도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던 게 우리다. 2012년이 돼서야 현직 대통령(이명박)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서해교전이라는 표현이 연평해전으로 격상된 것도 그때였다. 그동안 전사자와 가족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의회 연설에서 라이언을 호명하며 “위대한 미국을 함께 만들자”고 호소하는 트럼프가 더욱 달라 보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