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변론을 끝내고 평의(재판관 전체회의)를 시작했다. 헌법재판관들은 약 2주간 선고를 내리기 위한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3분의 2가 찬성해야 통과되는 중(重)다수결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탄핵 기각이든 인용이든 올해에는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대통령 선거는 단순 다수결의 원리를 따른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했지만 이를 반대하는 집단도 있기 때문에 탄핵 사태까지 일어났다.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라는 게 얼마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과연 민주적 의사 결정이 그 집단의 대표성을 가질 수는 있을까? 정규재TV 2014년 5월29일 ‘이성의 한계’는 우리의 이성과 민주적 의사 결정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이날 방송에서 정규재 주필은 다카하시 쇼이치로의 《이성의 한계:극한의 지적 유희》를 먼저 소개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과연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묻는다.

정 주필은 “일반적으로 개인은 ‘선호 추이율’을 따르기 때문에 합리적 선택이 가능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되면 이것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예로 ‘콩도르세의 역설’과 ‘보르다의 역설’을 들었다. 프랑스 수학자이자 사상가인 마르퀴 드 콩도르세는 A를 B보다 좋아하고 B를 C보다 좋아하면 반드시 A를 C보다 좋아해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그렇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복수의 선택지에서 단수를 선택하는 단기 투표방식이 비민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한 것이 물리학자 장 샤를 보르다의 ‘보르다 투표’ 방법이다. 단순 다수결이 아니라 1등에 3점, 2등에 2점식으로 선호 순위에 점수를 매겨 합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르다 투표도 ‘전략적 투표’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1위 표를 많이 받은 후보도 반대파들이 낮은 순위에 몰표를 던지면 떨어진다.

이처럼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되면 합리적 결정은 어려워진다.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는 “민주적 의사 결정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군중으로부터 독배를 받았다. 지난달 21일 별세한 케네스 애로도 민주적 의사 결정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수여했다.

정 주필은 “둘 다 대중은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중민주주의는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한 사람은 독배를, 다른 한 사람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며 “소크라테스는 대중이 알아듣는 말로 얘기했지만, 애로는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수식을 사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형진 정규재TV PD starhaw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