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신출내기 스포츠 에이전트다. 2년 전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회사를 차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엔 야구선수들과 계약에 성공하며 프로야구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A씨와 동료들은 조만간 야구 시장에서 퇴출될 처지에 놓였다. 지난 3일 프로야구선수협회가 공인 에이전트 제도 도입을 앞두고 확정한 자격요건이 ‘야구계 5년 이상 경력자’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선수협이 발표한 공인 야구 에이전트 자격을 두고 시장 진입을 노리던 업계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려 한다”는 불만을 내놓고 있다. 스포츠산업 활성화와 에이전트 전문성 강화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모양새다.

선수협에 따르면 연말 시행되는 공인 야구 에이전트 자격은 △변호사 △프로야구 선수·감독·코치 출신(5년 이상 등록) △한국야구위원회(KBO) 회원 야구단 직원 및 선수협회 임직원(5년 이상) △메이저리그(MLB) 선수협회·일본프로야구(NPB) 선수협회 공인선수대리인 △스포츠 마케팅·스포츠 언론 경력자(5년 이상)에게만 주어질 예정이다.

이에 따라 야구 구단·기관 종사 경력이 없고 일을 시작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A씨는 공인 자격을 얻을 수 없다. 제도 시행 이후엔 소속 선수들과의 계약을 물려야 할 상황이다.

그는 “선수협이 의견을 청취하겠다고 했지만 불만을 얘기한다고 해서 바뀔 것 같지는 않다”며 “우리 같은 신규 진입 업체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날 선수협이 주최한 ‘에이전트 세미나’에서 높아진 진입 장벽을 우려한 사람은 A씨뿐만이 아니다.

B씨는 “다른 종목에서 에이전트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더라도 야구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구단에 재취업이라도 해야 되는 것이냐”고 말했다.

선수협은 B씨 같은 에이전시 등 스포츠 마케팅 기업 5년 이상 경력자에게도 에이전트 자격을 줄 예정이다. 하지만 기업 규모에 따라 허용 여부가 갈리는 데다 이를 평가할 세부 평가항목은 마련되지 않았다.

체육학 박사 과정인 C씨는 “새로 발을 딛는 사람들을 아예 막아버리는 제도”라며 “에이전트가 스포츠산업이 되기 위해선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진출 가능하도록 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차별적 문호 개방이 부담스럽다면 선수가 직접 지정한 사람에 한해 공인 에이전트 등록이 가능한 특별 조항 등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선수협은 자격요건을 사실상 확정하고 “변동의 여지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김선웅 선수협 사무총장은 “스포츠산업적인 접근보다 선수와 에이전트의 권익을 훼손하지 않는 게 우선”이라며 “전문적인 야구 에이전트가 선수를 대리하고 보호할 수 있다는 건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도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선수협은 여기서 더 나아가 계약한 선수가 있을 경우에만 에이전트 공인 등록이 가능한 선수지정제도 검토할 예정이다.

야구계가 문호 개방에 경계심을 갖는 건 에이전트를 사칭한 ‘아는 형님’들이 프로야구를 뿌리째 흔든 충격 때문이기도 하다. 문우람, 이태양 등을 조종해 승부조작 사태를 일으킨 ‘가짜 에이전트’들의 접근을 미연에 막겠다는 취지다. 앞으로 승부조작이 일어날 경우 에이전트의 연대책임을 묻는 방안을 언급할 정도다.

이 같은 움직임이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다. 취업준비생인 D씨는 “선수협의 입장을 고려해 보면 ‘야구 전문가’들에게만 에이전트 자격을 주겠다는 게 이해되고 오히려 야구계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스포츠산업 계열 취업을 준비 중인 그는 ‘야구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 야구단에서 5년 동안 일할 생각이 있나’라는 질문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며 “그렇게 안목과 실력을 쌓아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