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를 찾은 관람객이 박목월의 시 ‘눈이 온 아침’을 형상화한 서양화가 윤시영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6일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를 찾은 관람객이 박목월의 시 ‘눈이 온 아침’을 형상화한 서양화가 윤시영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저항 시인 윤동주(1917~1945)는 1917년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28년 생애의 절반을 그곳에서 보내며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을 키웠다. 명동소학교에서 ‘새 명동’이라는 잡지를 펴낼 정도로 일찍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인 그는 연희전문학교에서 공부하며 민족의 현실을 시에 담아내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동주의 시를 비롯해 이육사 김영랑 정지용 박목월 김남조 등 유명한 시인들의 다양한 시를 시각예술로 형상화한 그림을 모은 이색적인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가 개관 5주년 특별전으로 6일 개막한 ‘그림과 시(art&poem)’전이다. 원로 화가 박돈을 비롯해 김구림 황주리 김근중 정일 이명숙 황은하 윤시영 씨 등 유명 작가 13명이 유명 시인들의 주옥같은 시를 그림으로 재탄생시킨 작품 20여점을 걸었다. 화가들은 저마다 시정(詩情)과 화의(畵意)가 넘치는 특별한 그림으로 시를 읊조렸다. 유명 시인들의 대표작을 그림으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박돈 화백은 김남조의 시 ‘달밤’을 황토색 붓질로 따뜻하면서도 차분하게 그렸다.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는 달밤의 아름다운 풍경에서 느낀 동양적 윤회사상을 붓질로 형상화했다는 게 박 화백의 설명이다. 여성 화가 황주리 씨도 김 시인의 ‘편지’를 삽화 같은 풍경화로 살려냈다. 황씨는 “캔버스 앞에 앉아 작업할 때 자주 읊조리는 애송시”라며 “가슴 한편에 숨겨둔 아련한 첫사랑과 추억을 그려냈다”고 말했다.

한국화가 김근중 씨는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를 모티브로 삼아 모란과 새를 소재로 몽환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김씨는 “지난해 가을 지리산, 설악산을 따라 여행하며 본 모란이 마음에 들어 김남조 시인의 시와 오버랩시켰다”고 설명했다.

서양화가 이명숙 씨는 윤동주의 시 ‘풍경’을 색면추상으로 차지게 묘사했다. 화창한 봄날을 은유한 녹색과 어둠이 짓누른 조국의 현실을 검은색으로 구성해 일제 치하의 암울함을 색채 미학으로 읽어냈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노태웅 씨는 박용철의 시 ‘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를 인적이 끊긴 기차역 풍경으로 간결하고 포근하게 그렸다. 사랑하는 남녀의 극적인 만남과 헤어짐을 기차역으로 상징화해 표현한 게 흥미롭다. 이상의 유명 시 ‘꽃나무’를 고목과 녹색 초원으로 콜라주한 김구림, 박목월의 시 ‘빈 컵’을 색채 언어로 수놓은 황은하, 정지용의 시 ‘호수’를 은빛 구슬로 모자이크한 김이유, 천상병의 ‘음악’을 첼로의 이미지로 승화한 이영선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중견 시인이자 갤러리스트인 김성옥 씨는 “예술의 목적은 결국 아름다움의 창조인 만큼 그림과 시의 만남을 통해 대자연의 힘과 평화,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