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봉사한다면…
“국회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아니라, 헌법에도 없는 사실상의 불신임을 결의한 꼴”이라는 김평우 변호사의 비판은 일리가 있다. 탄핵소추장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선언문이기 때문에 공문서가 요구하는 법률적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한 문학작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장의 미적 혹은 법률적 완결성 여부가 본질 문제는 아닐 것이다. 탄핵절차는 과연 적법하였는가 하는 원초적 질문이 여전히 남아있다.

△탄핵소추가 팩트에 기초하였는지 △소추장이 국회의원들에게 사전에 배부되었는지 △소추내용이 피소추인(박근혜 대통령)에게 고지되었는지 △의원들이 법률적 쟁점들을 명확하게 인지하였는지 △토론 과정을 거쳤는지 등 허다한 문제들은 재판 초기부터 쟁점이었다. 13개 탄핵사유가 개별적으로 투표되지 않고 1개의 안건으로 일괄 투표되었다는 문제는 더 심각한 흠결이다. 헌법재판소는 13개 탄핵사유 중 한 개라도 인용되면 이를 이유로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다. 그런데 국회표결은 13개 사유를 묶어서 한 개의 분리불가능한 안건으로 표결했다. 실제 13건의 사유를 개별 안건으로 투표하였다면 논란이 많았던 세월호건을 포함해 여러 개의 탄핵 사유가 3분의 2의 필요 정족수에 미치지 못했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 불일치 문제를 헌재가 충분히 다루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렵다. 헌재 심의에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국회의 눈치를 보거나 봉사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헌재는, 표결 방법 등은 국회의 자율적 영역에 속한다며 과정의 불법성 문제는 아예 다루지도 않았다. 이번 사건만 그런 것도 아니다.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위헌심판청구의 건 즉, 2015헌라11호 사건도 그렇다. 조용호 등 소수는 인용을 주장했던 이 사건에서 헌재는 결국 선진화법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이유도 같다. 국회가 결정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합헌 판결로 판도라 상자가 열렸고 국회는 무능의 괴물로 변해 갔다.

국회는 재적 과반수에 출석 과반수로 의결한다고 헌법은 정하고 있다. 헌법 제49조의 유명한 다수결 조항이다. 물론 헌법은 사안의 중요성에 비례해 점증하는 중(重)다수결을 정하고도 있다. 법률안의 재의결은 재적 과반과 출석 3분의 2(헌법 제53조)를, 국무위원 해임건의, 계엄해제요구는 재적의원 과반수(헌법 제63조)를, 국회의원 제명, 탄핵소추, 헌법개정안은 재적의원 3분의 2(헌법 제64조, 제65조, 제130조)의 정족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은 헌법개정이 아닌 하위 법률인 국회법을 고치는 방법으로 헌법이 정한 중다수결 중에서도 무거운 재적 5분의 3결을 요구하는 정족수의 변경을 만들어 냈다. 당시 헌재는 ‘국회는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그만이라는 논리로 국회가 제멋대로 창설한 5분의 3 중다수결을 합헌으로 판결했다.

이 때문에 헌법의 다수결 제도가 국회법에 의해 ‘사실상 합의제’ 혹은 ‘소수결’로 전환되는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또 5분의 3을 충족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 개개인의 비토권력은 무소불위로 강화되는 부작용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국회를 이토록 무능 부패하게 만들었고 국회를 사법과 행정 위에 군림하는 인민위원회로 변질시켜 왔다. 서비스활성화법 노동개혁법 등 거의 모든 경제활성화법이 무산된 것은 헌재가 위헌적 국회선진화법을 합헌으로 결정해준 결과다. 국민들은 그 결과인 국가의 무능부패에 대해 지금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헌재가 국회 자치라는 명분 아래 입법부에 대한 견제 역할을 포기해 버린다면 더는 3권 분립이 존재하기 어렵다. 헌재는 이번에도 국회의 자기결정에 관한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헌재의 권한을 포기하는 것이고 곧바로 국회의 시녀로 되고 마는 지름길이다. 국회도 법치의 테두리에서 일하는 곳이다. 상대가 있는 법률행위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에는 그 상대가 더구나 대통령이다. 국회를 법에 따라 일하도록 만드는 것은 헌재의 역할이다. 기본을 잊지 마시라.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